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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09. 2020

경기 유랑 연천 편 2-2(당포성)

임진강, 한탄강가의 고구려 성곽들

한탄강을 따라 발길을 다시 서쪽으로 돌려보니 한탄강은 어느새 그 장쾌한 물줄기와 함께 임진강에게 그 물길을 내어주고 만다. 도회지의 풍경은 오간데 없고, 도로 주요 지점마다 대전차 방호벽과 벙커로 보이는 구조물들, 곳곳에서 보이는 군부대들만이 여전히 연천이 최전방 지역이란 사실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들었다. 이런 사실이 연천을 군사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었고, 연천의 자연이 지금까지 보전되는데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군사적 시설물들이 긴장감을 다소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산과 들이 어우러지면서 고개를 조금 왼쪽으로 돌리면 강이 흐르고 있고, 서정적인 전경과 함께 나의 마음은 녹아내렸다. 우리나라만큼 산과 들 강이 한 프레임으로 담기는 곳은 잘 없을 것이다. 30여분을 달리다가 드디어 표지판에 당포성이 나온다. 들어가는 입구는 좁았지만 이윽고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고, 멀리서 우뚝 솟은 나무와 함께 언덕 비슷한 성벽이 눈에 띄었다.

당포성은 임진강으로 인하여 형성된 약 13m 높이의 긴 삼각형 단애(斷崖) 위에 축성되어 있으며, 입지조건과 평면형태 및 축성방법은 호로고루 및 은대리성과 매우 유사하다. 요충지에 위치한 당포성은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적을 방어하는데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곳은 임진강을 건너 양주 방면으로 남하하는 적을 방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위치이므로 나당 전쟁 이후 신라가 진출하여 당포성의 외벽에 석축벽을 덧붙여서 보강하고 계속 활용하였다.

드디어 나무가 우뚝 솟은 동벽 앞에 도착했다. 밑에서 나무 쪽을 올려다보니 일찍이 성벽에 오른 사람들이 나무를 배경으로 사이좋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띈다. 성벽 위에 우뚝 솟은 나무는 나름 당포성의 명물이라 심심치 않게 사람들이 종종 찾는다고 한다. 어서 성벽을 올라 그 풍경을 나도 즐기고 싶었다. 동벽을 돌다가 밑을 자세히 살펴보면 독특하게 파여 있는 흔적을 보게 되는데 처음에는 발굴조사를 위해 남겨놓은 흔적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관찰을 해 보니 철로 만든 굴뚝도 보이고 구덩이 안쪽에는 철로 된 문 그리고 다양한 시설물들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여기 성의 위치가 최전선이라 군대에서 방어를 위해서 군대 방어용 벙커를 설치한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예전에 실제로 당포성 자리에 군부대로 쓰였다고 한다.

동벽을 돌아 성 내부로 발걸음을 욺 겨본다. 토성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당포성에 석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성벽의 돌들이 천년이 지나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고구려의 기상이 절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성벽 아래에는 30m 아래의 임진강 강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눈앞에 보인다. 정말 천혜의 요새란 이런 것이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성벽 안은 너른 공터가 빈 공간만 남긴 채 텅 비워져 있었다. 예전에 군부대가 여기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지금이라도 우리가 역사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문뜩 해 보았다. 예전엔 여기에서 병사들이 경계 근무도 서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언제쯤 집에 돌아갈까? 고향에 계신 부모님, 아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물은 오늘도 말없이 흐를 뿐이다.
동벽위엔 전망시설이 위치해 드디어 당포성의 명물 성벽 위의 나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나무 옆에 벤치에 앉아 먼 하늘을 지켜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성벽은 비록 거의 무너졌지만 전쟁의 비극은 여전하구나 생각을 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모든 사람들의 염원대로 평화가 찾아오길 빌면서 마지막 장소로 이동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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