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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12. 2020

경기 유랑 연천 편 3-1 (재인폭포)

민통선 끝 동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남쪽에 있는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된 경계선. 보통 민통선이라고 줄여서 부르는데, 연천 지역은 민통선의 구간이 꽤 길지만 산 따라 강 따라 많은 발자취를 우리에게 남겨주었고, 최근에 와서야 민통선이 해제된 구간도 꽤 있어서 그동안 드러나 있지 않은 숨은 비경들을 자아내고 있다. 최전방에 있는 지역인 만큼 가는 길에 있는 군시설물들과 군부대들 민간인 차량보다 많은 군부대 차량이 우리를 다소 긴장되고 움츠러들게 만들지만 그런 핸디캡들을 떨치고 들어간 수많은 유적들과 자연경관은 충분히 보상을 하고 남을 만했다.

오늘은 한탄강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한탄강은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2020년 7월 7일에 인증되면서 제주도, 청송, 무등산에 이어 4번째로 인증받는 곳이다. 전 세계로 따져도 40개국에 140개 밖에 없으니까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한탄강은 철원을 지나 포천, 연천을 거쳐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길이 136km의 작은 강이지만 특이하게 현무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상절리와 기암괴석이 많아 절벽과 어우러지면서 주변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한탄강으로 기점을 세운 궁예의 비극이 도사리기도 하고, 이 지역에서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의 바이러스를 찾고 ‘한탄 바이러스’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던 장소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뒤로 하고,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 산으로 막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점까지 올라가니 거대한 계곡의 장관이 우리를 반긴다. 아래는 깎아지르듯 끝없는 낭떠러지고, 그 사이로 물줄기가 가느다란 비단결처럼 흘러내린다. 이곳이 한탄강을 대표하는 폭포라고 할 수 있는 재인폭포다.

여기 재인폭포에는 다소 슬픈 전설이 곁들어 있는데, 옛날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 우연히 이 고을에 사는 재인의 아내를 발견하였다. 원님은 아내의 미색에 반해 범하고자 했는데 재인의 아내는 “쇤네는 주인이 있는 아낙입니다.” 하고 강력히 거절하였다. 정욕에 사로잡힌 원님이 “네 서방이 뭐하는 놈이냐?” 하고 물으니, 여인은 대답하기를 “이 고장에서는 제일 소문난 외줄 타기 재인입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답하였다. 이에 원님은 재인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차지하려는 생각으로 줄타기 대회를 열기로 하고, 재인을 죽이기 위해 밧줄에 칼집을 내서 폭포 위의 절벽에 매어 놓고는 줄을 타게 하였다. 재인이 떨어져서 죽으니 원님은 여인에게 “이제는 네 남편이 없으니, 나와 같이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 하고는 강제로 수청을 들게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뜯고 자결하여 절개를 지켰다. 이 일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재인과 아내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폭포를 ‘재인폭포’라 하였고, 그들이 살던 마을은 ‘코문이’라고 하였다. 설화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재인의 아내뿐만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이 벼슬아치와 양반들의 수탈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이곳저곳에는 그런 설화들이 참 많다. 춘향전도 어떻게 보면 그런 수탈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북쪽에 있는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하천이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을 따라 물줄기가 쏟아지는 광경이 정말 장관이다. 지금은 가을철이라 물줄기가 다소 약했지만 주위의 현무암 주상절리층을 가까이서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생경했다.
아직은 주변 환경 개선 중이라 조금 어수선하지만 여름철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질 때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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