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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13. 2020

경기 유랑 연천 편 3-2 (한탄강 지질공원)

민통선 끝 동네

더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반대편으로 연천의 명소들을 찾아 떠나는 길에 마침 조선왕가라는 이 지역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명소 안내판이 있어, 호기심 반 기대감 반의 기분으로 가는 길에 한번 들려보았다. 한쪽에는 웅장한 한옥 건물이 있었고, 정면에는 아마도 카페용 도로 사용할 현대적 건축물이 공사 중이었는데 시공사와의 갈등으로 을씨년스러운 현수막만 걸려있었다.

그래도 구경은 한번 해보고 싶어서 접근을 해보니 입구에는 천막이 가로막고 있었고, 직원은 한옥호텔로 사용 중이라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왔다. 아 그렇다!! 원래 서울 명륜동에 있었던 왕가의 저택 염근당이 이곳으로 이건(移建)되어서 연천으로 온 것이다. 현재는 호텔로만 사용되기 때문에 관람은 불가능해서 아쉬웠지만 연륜이 깊은 한옥에서 한 번쯤 묵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하는 생각만 얻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연천은 곳곳에 고구려의 흔적을 짙게 남아있어, 성곽들은 물론 삶과 죽음의 흔적도 볼 수 있는데, 신답리 고분에서 그 발자취를 조금 느낄 수 있다. 한탄강을 따라가다가 밭 사잇길로 넓지도 작지도 않은 개활지 한가운데 2기의 고분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답리 고분군은 고구려의 석실 봉토분으로서 매장시설로 석실을 사용하고 봉토를 덮은 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석실은 특이하게 한탄강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무암을 사용한 게 특징이다. 성곽은 전쟁으로 언제든 함락될 수 있지만 고분까지 연천지역에 세워졌다는 뜻은 곧 고구려가 연천지역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았다는 걸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한탄강을 따라서 수많은 문화, 자연유산이 남아있는데 아우라지 배게 용암에 가서는 예전 신생대 4기 때 분출되었던 용암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데, 제주도의 주상절리처럼 강가의 깎아지른 절벽의 끝에 마치 돌베개가 쌓여있는 것처럼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배게 용암이 나타나는데, 강 건너편이라 육안으로 자세히 보긴 힘들었다.

한탄강가의 최고 절경 중 하나인 좌상 바위로 이동해본다. 사실 재인폭포로 올라가는 길에 좌상 바위의 위용을 살짝 곁눈질로 지켜보았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잘 닦여있는 트레킹 길을 따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욺 겨본다. 풀밭에는 수많은 여치와 메뚜기들이 뛰놀고 있고, 하늘에는 꿀벌과 잠자리가 여기저기 비행하고 있다. 현재 연천에는 인간의 영역보다 자연의 영역이 넓다.

강을 따라 커브를 돌기 직전에 바위라기 보단 산에 가까운 거대한 좌상 바위의 위용이 드러난다. 높이가 약 60m로 화산재를 머금은 듯 검은 그을음을 남기고 있고, 강가의 모래사장과 어우러져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좌상 바위란 이름은 원래 궁평리 마을 오른쪽에 장승이 있었는데 그 오른쪽 바위를 장승 왼쪽 바위라고 해서 좌상 바위라 하여 그 이름이 지금껏 전해졌다.

이미 몇 번 왔었던 한탄강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나의 발걸음은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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