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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15. 2020

경기 유랑 연천 편 3-4(전곡 선사유적)

민통선 끝 동네

1977년 1월 추위가 절정에 달하던 한탄강변에서 산책을 하던 연인이 있었다. 파란 눈을 가진 군복을 입은 남성과 한 여인은 추운 날씨 속에서 강변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유심히 바닥을 살펴보고 있다.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려고 돌을 모으는 순간 군인은 이것이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가 그 순간 발견된 것이다. 이때부터 한반도의 역사는 바뀌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인 전곡리 선사 유적지가 바로 그곳이다. 그렉 보웬이라고 불리는 이방인은 군입대 전 전공이 고고학이었고, 평소에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 강과 산이 있는 장소에서 특이한 지층이 형성돼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 발견은 당시 고고학 학계에서 엄청난 충격을 불러온 대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 뗀석기가 발견되지 않아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 발견되지 않는 지역으로 나누어, 인류의 이동노선을 유럽, 아프리카와 동아시아로 양분했었는데 이 학설이 정말 뒤집혀져서 역사책을 다시 써야 할 정도였다.

여기 연천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는데, 군대와 한탄강 말고 내세울 게 없던 동네 연천에서 구석기를 콘셉트로 수많은 공공시설에 원시인 캐릭터와 리얼한 원시인 모형을 설치했다. 매년 5월이면 선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구석기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고, 유적지 북쪽에는 전곡 선사박물관이 개관해서 많은 사람들을 연천에 찾게 만들었다.

우선 유적지를 돌아보기 전에 박물관을 찾아 어느 정도 정보를 얻고 싶어 먼저 전곡 선사박물관에 가서 본격적으로 선사시대의 여행을 시작했다. 입구에서부터 화장실이라던가 터널 등 다양한 조형물이 디테일하게 꾸며져 있어서, 박물관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아지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박물관의 외관도 평범하지 않다. 1층을 양측면만 남기고 비웠으며, 2층부턴 공중에 뜬 것처럼 설계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ufo에 탑승하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전시실은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감동을 받은 전시가 몇 개 있었는데, 디테일이 살아있는 마네킹을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을 주제로 유인원부터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호모 사피엔스까지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옆에는 동물들까지 살아있는 마네킹으로 진열을 해서 더욱 실감이 났다. 한쪽에는 동굴로 들어가서 세계의 유명 동굴벽화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전 세계 유명 벽화를 한 자리에서 보니 마치 한자리에서 세계일주를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곡리 유적은 규모가 무척 커서 다시 차를 끌고 남쪽 입구로 가야만 했다. 입구에는 원시인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듯한 표정을 짓고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고대 선사인들이 살기 좋았던 지역인 만큼 넓은 평원과 강이 흐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소풍으로도 많이 찾고 있었고, 장소 여기저기에 있는 움막집과 조형물들은 ‘여기는 그래도 선사유적지야‘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한탄강변은 고대부터 사람들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운 자연 풍광뿐 아니라 후세 사람들한테 전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놓았다. 이젠 그 이야기들을 만나러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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