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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19. 2020

경기 유랑 연천 편 4-2 (숭의전)

망국의 한탄

다시 강줄기를 따라 고개를 한 두어 번 넘어가면서 우리가 그동안 거쳐갔었던 여러 명소들의 표지판을 다시 한번 가늠해보고, 역사적 명소들의 흔적들을 살펴보니 연천이라는 동네의 깊이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듯했다. 고려가 멸망하고 고려 유민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산골짜기 깊은 곳 궁벽한 장소에 고려시대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숭의전으로 찾아갔다.

터가 좁은 임진강 절벽 한편에 자리한 터라 주차장은 무척 좁았지만 평화누리길이 활성화되면서 자전거를 따라 국토탐방도 하고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고려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어 꽤 적지 않은 탐방객들로 인해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다. 비록 역사적 명소를 향해 떠나는 무거운 걸음이지만 진입로의 울창한 나무와 호젓한 숲길로 인해 머리끝에서부터 시원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전국 어느 명소를 가든 예로부터 주변의 나무와 숲이 잘 보전되어 있어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어울림이 녹아들어 가 있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렸을 땐 다른 나라에 비해 규모가 크지도 않고 화려함도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보며 다소 실망하기도 하고, 항상 다른 나라 사람들이 비교를 할 때 움츠러들기도 하는 등 우리 문화재에 대한 열등감 아닌 열등감을 느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덧 세계 유수의 명소도 가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었지만 점차 우리 문화재에 대한 시각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단지 문화재 자체가 아닌 그 주변 환경까지 보는 시야가 생기니 나의 생각이 그동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조상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건축물을 자연과 정말 어우러지게 지은 것 같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거대한 건축물도 시간이 지나면 감동이 덜해지는데 비해 우리 건축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계속 가게 되는 매력이 생긴다. 주변 환경에 비해 튀지 않게 지어서 긴장감이 사라지고, 4계절마다 앞마당에는 다양한 꽃과 풀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어느덧 언덕을 올라 다소 엄숙한 분위기의 사당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좁은 부지에 지어져서 앞 뒤로 건물이 있는 구조가 아니라 횡으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우리 건축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기대감이 생겼었다. 앞에는 건물의 연혁을 말해주듯 거대한 나무들이 강물의 전망을 가리며 우뚝 솟아 있었고, 비록 시원한 경치는 보기 힘들었지만 건물의 위엄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라 엄숙한 기운이 건물 권역 사이에 맴돌았다.

하지만 한 고양이의 존재로 인해 그러한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졌다. 길거리에 다니는 수많은 길고양이들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 자리를 피하기 마련인데 그 고양이는 마치 숭의전의 수호신처럼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사람들의 손길도 딱히 거부하지 않는다. 비록 미물의 몸이지만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낫다. 오랫동안 숭의전의 명물로 자리하길 바란다.

숭의전은 왼쪽 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건물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먼저 제례준비를 하는 영암 재부터 시작하여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 그리고 고려 4 왕의 위패를 모신 숭의전과 16명의 고려 공신이 모셔진 배 신청까지 둘러볼 수 있다.

숭의전에서 태조 왕건의 영정을 배알 하고, 16 공신의 명패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내가 아는 인물의 면모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예전에 인기 있던 드라마 <<태조 왕건>>의 영향으로 다소 낯이 익은 인물도 보이는데 복지겸, 유금필 장군과 더불어 공산전투에서 위기에 빠진 왕건을 대신하여 목숨을 잃은 신숭겸 장군의 위패도 눈여겨본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도 어느새 우리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여전히 숭의전은 그 자태를 간직한 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문화재가 우리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꾸준히 사랑과 관심을 보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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