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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Sep 22. 2020

경기 유랑 김포 편 2-2(덕포진)

한강을 따라서 바다를 따라서 – 김포 평화누리길과 그 주변

언덕에 오르니 싱그러운 풀의 향기가 밀려오고, 사방에는 수많은 여치와 메뚜기들이 뛰어놀면서 나를 반겨준다. 어느덧 흙으로 덮여서 잘 보이지 않았던 포대의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강화도 쪽에 위치한 돈대들이 돌로 된 두터운 성벽으로 만들어진데 반해서 덕포진은 흙으로 쌓은 토성이라 밖에서 보면 눈에 띄지도 않고 위압적인 위세도 전혀 없지만 토성 안의 12개의 포대에 의지해서 조상들이 그 무서운 프랑스, 미국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우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1980년 포대 ·돈대 및 파수청(把守廳) 터의 발굴조사에서 1874년에 만든 포와 포탄, 조선시대의 화폐인 상평통보 및 주춧돌과 화덕 등이 출토되었다고 하니 지금은 풀밭으로 덮인 여기 땅 속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다시 햇빛을 볼 날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프랑스, 미국과 벌인 전투인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에 대해서는 강화도를 가면서 자세히 보기로 하고 위쪽으로 더 올라가 보기로 한다. 앞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나를 붙잡고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보소 젊은이.... 억울한 노인네의 얘기 한번 들어볼 텐가? 나는 손돌이란 뱃사공인데 지금으로부터 어연 천 년 전의 사람이지” 얼핏 옛날 만담 집이나, 소설에서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라 귀신의 이야기를 무언의 끄덕임으로 경청을 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여기에서 초지(강화도 초지진 부근)까지 사람들은 싣고 나르는 뱃사공이었다네 육지에서 섬까지 지근거리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지만 물살이 세고 거칠어서 건너기가 쉬운 편은 아니라네.....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왕과 신하들이 어찌나 급하게 내려오던지 말도 말게 허허허 이 늙은이는 그저 전하와 나으리들을 물길을 따라 안전하게 모시고 싶었을 뿐인데 몽골의 앞잡이(첩자)로 오해받아 죽게 되었다네 흑흑 후에 나의 충정을 인정받아 임금이 이렇게 무덤도 만들어주고 제사도 지내고 한다네 나야 그냥 흘러가는 민초로 살다 갔지만 자네는 자네만의 길을 잘 걸어가 보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 다음 고개를 드니 어느새 노인의 형상은 사라지고 청초한 봉분이 눈 앞에 서있었다.


나도 손돌처럼 한 사람의 민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바람이 불면 먼저 흔들리고, 아예 드러누울 수 도 있다. 손돌을 죽였던 왕은 강화섬에서 끝내 나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산 자락 한 구석에 묻혀 있지만 손돌의 묘는 높은 곳에서 강화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가 지나다녔던 해협은 지금까지 손돌목이라는 지명으로 살아 남아 민초의 끈질김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손돌의 묘 앞에 서서 절을 올리고는 천천히 철책선을 따라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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