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민 Sep 22. 2020

경기 유랑 김포 편 2-3(문수산성)

한강을 따라서 바다를 따라서 -김포 평화누리길과 그 주변

비록 철조망이 있고, 흙길이라 먼지가 풀풀 흩날리기도 하지만 건너편 염하(鹽河)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여기가 김포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잔잔하고 고요했다. 들리는 것은 새의 울음과 나의 숨소리 발걸음뿐, 어느덧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연의 소리에 좀 더 집중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했다.

어느덧 건너편 산자락에서 돌로 된 성문이 우뚝 솟아 나를 맞아준다. 드디어 문수산성에 도착한 것이다. 문수산이라는 이름은 사실 흔하다. 아마 불교의 문수보살(文殊菩薩)에서 유래되었을 터인데 김포뿐만 아니라 내가 예전에 살던 울산에도 있고, 용인에도 문수산이란 지명이 있다고 하니 흔하디 흔한 산 이름이지만 이 산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문수산성이란 성곽 때문이다.

국방을 중시한 조선 숙종에 의해 1694년에 지어졌으며, 특히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의 엄청난 격전지였다고 한다. 이때의 격전으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고, 성내가 크게 유린되었다. 지금은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섰으며,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성문은 남문으로 2002년에 복원이 완료된 복제품에 불과할 수 있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더욱더 구체화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문수산성의 진면목을 알려면 문수산을 등산할 수밖에 없기에 머뭇거림이 조금 있지만 여기까지 온 게 너무나 아쉬워 품속에 아껴둔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물며 오르는 첫 발을 내디뎠다.

내가 어렸을 땐 등산을 무척 싫어했었다. 힘들게 오르는 행위도 왜 쓸데없는 고생을 자처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고, 특히 산에는 모기와 벌, 파리 같은 벌레도 득실거리고 바닥은 돌이나 진흙으로 뒤덮여서 신발이 성할 날이 없었으며 기껏 힘들게 올라와서는 올라온 만큼 힘들게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드니 약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고개를 들일 보다 숙일 일이 많다는 사실, 항상 누군가로 인해 마치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평가를 항상 받아야 한다는 점, 항상 조리당하고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 산에서는 우리는 하나의 자연이 되어 호쾌하게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며 이 순간만큼은 권력자의 감성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산 중턱에 올라보니 어느새 시야를 가렸던 나무숲은 사라지고, 김포 땅과 강화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김포 땅이 생각보다 넓어서 그런지 아무리 신도시가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넓은 산과 들판이 남아있어 이 도시만의 매력이 아닐까 했다. 북쪽 방향으로 고개를 드니 산 능선을 따라 나지막한 성벽이 정상을 향해 뻗어있어서 산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큰 숨을 들이쉬고는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욺 겨본다.

비록 376m의 낮은 산이지만 꽤 경사가 급하고 능선도 길어서 오르기가 수월치 않았지만 돌을 손에 메고 산에 올랐던 민초들을 생각하며 한발 한발 내디뎌 본다. 성벽의 높이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하지만 천연 성벽인 이 산에 의지하여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이겨냈었고, 지금까지 굳건히 김포의 산하(山河)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벽과 나란히 걸으면서 조선시대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 당시의 장군과 병졸이 되어보면서 적군을 맞이하는 상황을 맞이해보니, 병졸들의 이마, 손, 발에서 흘렸을 긴장과 땀, 장군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웠을 심정, 마을을 버리고 성벽으로 도망쳐 숨어 지내던 백성들의 두려움과 원망 모든 것들이 나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어느덧 산 정상이 보이고, 둥그런 성벽으로 둘러싸인 장대(將臺)의 위용이 어서 오라고 나를 손짓하고 있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장대(將臺)는 전시에 장군들의 지휘소로 사용되었는데,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강화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는 2척의 함정과 해전 육전대원들로 한성근과 지홍관이 150명의 병사들로 지키던 문수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3명의 전사자와 2명의 부상자만 남기고 철수하게 되었고, 프랑스 해군의 손아귀에 넘어가 산 부근의 일부 성벽만 남고 해안가를 비롯한 성벽 시설물들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장대위에 서서 북쪽을 바라다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북한 땅이 눈에 아른거린다. 저 앞에 보이는 개성 땅에는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가 남겨져 있을 것이다. 미완의 여로로 남기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산을 내려간다.

작가의 이전글 경기 유랑 김포 편 2-2(덕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