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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25. 2020

경기 유랑 고양 편 2-1 (벽제관)

고양의 원류(源流)

우리나라 도시의 구조를 살펴보면 최근에 조성된 신도시를 제외하고는 옛 중심지 대부분에 향교나 동헌이 위치해, 그 도시의 역사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고양의 도시구조를 살펴보면 서울과 비교적 근거리인 덕양구엔 화정동 지역이 상권을 형성해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고, 일산신도시 자체에도 큰 상권이 있어 각각 고양시의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 어느 지역에 가도 그 도시의 역사를 짐작할만한 상징성이 있는 문화재나 오래된 건물, 어떤 흔적들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고양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고양시 북쪽끝 구석진 동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송추나 일영유원지로 가는 길목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했던 마을, ‘고양동‘에서 인구 백만이 넘는 대도시 고양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고양의 역사는 생각이상으로 그 유래가 무척 오래되었는데, 고려시대에 ‘고봉’과 ‘덕양’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에 고봉현과 덕양현을 통합해서 고양으로 고치고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시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으니 고양의 역사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고양의 옛 문화유적들은 지금은 작은동네지만 고양동 지역에 상당수 분포하고 있고, 향교는 물론 중국사신들이 머물렀다는 벽제관지와 최영장군의 묘, 그리고 중남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중남미 문화원이 있어 매력적인 여행지가 많고, 고양시에서 고양누리길을 통해 트레킹을 하면서 고양의 문화유산을 즐길수 있게 코스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가든식당의 원조이자 지금도 유명한 벽제갈비가 지척에 있다. 우선 고양동 지역으로 이동해 중국사신들이 서울로 들어오기 전에 한숨 쉬어갔다는 벽제관지로 찾아가 보자.

일산신도시를 지나 덕양구 지역으로 오면 군데 군데 조그만한 신도시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울과 가까운 이점 덕분에 스타필드나 이케아 같은 대형 쇼핑 시설과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 있고, 자유로로 모자라 제2자유로도 도로가 닦여졌지만 단지 서울을 위한 bedtown일뿐 고양만의 아이덴티는 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점점 산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울창한 숲과 계곡이 나타나 이번엔 어떤 이야깃거리가 나올지 기대감을 안고 동네 깊숙이 들어갔다.

이윽고 북한산 자락의 주택가가 나타나고 골목을 깊숙이 올라가다보면 탁 트인 너른한 터에 건물의 초석만 남아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벽제관이란 장소다, 혹자는 벽제갈비로 기억할 수 있고, 임진왜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명나라의 이여송이 뼈 아픈 패배를 당했던 벽제관전투의 현장으로 느낄수 있지만 벽제관은 중국에 오는 사신이 한양으로 오기 하루전 하루 묵어가거나 반대로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하루 쉬어가는 장소로 쓰였던 국립 여관으로서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곳 이다.

벽제관이 있는 고양동은 파주,양주,고양 지역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고려의 수도 였던 개성과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연결하는 중간지점 이었고, 서울에서 의주로 가는 경의대로의 주요지점중 하나로서 한양에서 이곳을 지나 파주편에서 소개했던 용미리 석불입상과 임진강을 건너 개성,평양,의주를 지나 중국으로 건너가는 주요루트 였다.

건물은 일제강점기때 헐리고 6 25전쟁으로 파괴되어 초석만 남아있지만 이번 여행의 출발지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고양동의 속살로 이동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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