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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Nov 02. 2020

경기 유랑 고양 편 3-4 (서오릉)

조선왕실의 명당

고양에는 서삼릉 말고도 왕실의 묘역이 위치해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오릉이 있다. 조선 후기 정치사 스캔들의 주인공인 숙종의 명릉과 장희빈의 대빈묘가 서오릉 반대편의 끝자리 각각 터를 잡고 안장되어 있다. 넓이만큼이나 산책길이 잘 조성됨은 물론 서울과의 거리가 비교적 근거리 다른 왕릉보다 탐방객이 많음으로 인해 주차장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만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구에는 역사문화관이 잘 갖춰저있었고, 곳곳마다 아픔의 흔적이 있는 서삼릉과 달리 울창한 숲이 잘 보전되어 있고,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서오릉은 5개의 왕릉뿐 아니라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 등 왕실 구성원의 묘소도 함께 있어서 돌아보는데 반나절 이상 잡아야 하고, 특히 마지막 구역에 위치한 창릉은 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오릉과 함께 한 반나절의 시간이 나에게는 그동안 답답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상쾌한 공기를 쐬면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오릉의 조성은 세조의 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가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일찍이 사망해 서오릉에 장지를 마련하며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서오릉의 현재 주인은 입장하자마자 초입에 보이는 숙종대왕의 명릉이다. 숙종은 장희빈과의 로맨스는 물론 당파싸움이 가장 극심한 시기에 환국이라는 묘수를 통해 항상 주도권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왕이지만, 사극이나 영화 등 여러 매 체마다 여러 모습이 부각돼 극에 따라 성격이 다양하게 보이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의 복잡한 성격과 여러 스캔들로 인한 건지는 모르지만 명릉은 두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와 쌍릉으로 조성되고, 덧붙여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릉이 오른쪽 릉에 들어서게 됨으로써 동원이 강(同原異岡)의 형식을 갖추게 했다. 죽어서도 왕비를 두 명을 끼고 함께 하게 돼 적막하진 않겠구나 생각하며 서오릉의 숲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명릉을 지나면 재실이 보이고 그 앞에는 일명 만남의 장소가 나타나는데 재실은 비록 문이 잠겨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곳곳을 수놓고 있어 서오릉을 돌아보느라 힘들었던 탐방객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길을 따라 수경원과 익릉, 순창원 등을 돌아보고 서오릉의 첫 입 주객이라 할 수 있는 덕종(의경세자)의 경릉에 도달했다. 덕종과 흔히 우리가 인수대비로 알고 있는 소혜왕후가 언덕을 마주 보고 묻혀 있지만 덕종의 왕릉보다 인수대비 즉 소혜왕후의 릉이 규모도 훨씬 크고 화려하다. 알고 보니 덕종은 사망할 당시 세자의 신분의 예를 따랐지만 소혜왕후는 왕의 어머니였고, 남편이 죽어서나마 왕으로 추촌을 받아 죽을 땐 왕후의 신분이기에 그런 결과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부턴 산길을 한없이 올라가야 한다. 그 초입엔 유명한 장희빈이 묻혀 있는 대빈묘가 한 구석에 조그맣게 음지에 웅크리고 있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묘도 원래는 남양주에 위치하다가 해방 후 이곳으로 욺 겨온 것이라 한다. 그의 낭군이 었던 숙종의 묘와 지척에 두고 자리하고 있어 멀리서나마 바라보며 무슨 하소연을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홍릉을 거쳐 창릉에 도착하니 깊은 숲 속이라 어둠은 좀 더 일찍 찾아오고 방송 스피커를 통해 입장객은 서둘러 퇴장하라는 말이 흘러나오며 오는 길을 더욱 재촉한다. 서오릉과 아쉽게 작별하지만 봄에 꽃이 환하게 필 때 한번 더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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