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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Nov 01. 2020

경기 유랑 고양 편 3-3 (서삼릉)

조선왕가의 명당

아침부터 일련의 사태를 겪고, 수많은 분묘군을 탐방하다 보니 배도 좀 고프고, 왕릉을 본격적으로 돌아보려면 체력이 필요할 거 같아 근처의 맛집에서 허기짐도 달래보고 재정비도 하기로 했다. 서삼릉 주위에는 종마목장도 있고, 길이 아름다워 카페와 음식점이 많은데 그중에서 한옥으로 지어진 <너른 마당>으로 가서 유명하다는 통오리 밀쌈도 먹어보고 잘 조성되어 있는 산책길을 돌아보았다.

여기 통오리 밀쌈은 인원수와 관계없이 오리 한 마리를 통째로 오랜 시간 동안 훈연으로 익힌 거라 사람 숫자에 따라 불편할 순 있지만 이윽고 오리 한 마리가 통째로 삶아져 나와 종업원이 직접 살을 발라주는 광경을 직접 보니 맛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갔고, 밀전병에 싸 먹는 오리고기라 조금 특이하긴 했다. 특히 껍질 부분이 바삭해서 식감도 괜찮았지만, 솔직히 둘이 먹기엔 양이 많아 물리긴 했다. 그래도 한옥의 정취와 호숫가의 경치가 맘에 들어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그런 식당이었다.

먼길을 돌고 돌아 다시 서삼릉 입구로 왔다. 다른 왕릉들과 달리 원당 종마목장 한쪽에 옹색하게 서 있어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엄연히 조선왕릉 군의 하나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과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 효릉, 그리고 철종과 철인왕후의 릉 예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효릉은 현재 농협 부지 안에 포함되어 들어가 볼 순 없고, 대신 사도세자의 아들 의소세손의 묘인 의령원과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인 효창원이 함께 있어 3개의 묘역을 함께 둘러보게 되어있다.

사방이 목초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래도 능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만 눈을 밖으로 돌려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목장의 풍경이 거슬려 뭔가 조치를 취해야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있었다. 아무튼 천천히 발길을 걷다 보니 희릉이 멀리서부터 나를 반겨주었다. 원래 중종은 원래 단경왕후가 있었는데 장인어른이 연산군의 처남 인터라 공신 세력에 의해 7일 만에 폐위되었고, 그다음 중종의 왕비가 되었는데 10년 만에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약관 25살에 불과한 나이기도 하고, 인종이 세자 시절에 문정왕후의 핍박을 받은 일들을 생각해보면 역사의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장경왕후가 건강했다면 인종이 조금 더 오래 살면서 어진 성군의 정치를 펼치지 않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다음 장소는 강화도령으로 유명한 철종의 예릉이다. 안동 김 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던 시절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강화도에 유배 왔던 왕가의 먼 친척인 철종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유교를 근본으로 하는 조선의 왕이 되려면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와 예의범절과 의식을 따라가야 하는데 생전 강화도의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며 살던 철종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시 사회는 삼정의 문란과 백성들의 민란으로 국가가 거의 파탄에 이르던 지경이었다. 꼭두각시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여색만 탐하다가 33살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양반가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60,70살까지는 사는데 왕실가의 사람들은 스트레스 때문이지는 모르겠으나 유난히 수명이 짧다.

마지막으로 어린 왕자들이 묻혀있는 의령원과 효창원 구역으로 왔다. 1940년대 최근에 서울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욺 겨왔지만 다행히 서삼릉의 구역 내로 들어와 왕실 어르신들의 보살핌을 잘 받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밖에도 소현세자의 묘역인 소경원이 있지만 역시나 목장 구역으로 들어가 비공개라 조금 아쉬웠다. 태실부터 시작해서 서삼릉의 묘역들을 탐방하면서 일제강점기 아픔의 흔적과 현대 산업화의 피해를 몸소 느끼면서 하루빨리 서삼릉의 묘역이 원 상태로 복원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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