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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Nov 04. 2020

경기 유랑 고양 편 4-1 (일산신도시)

신도시의 명(明)과 암(暗)

매일 아침 일산대교를 타고 차창 너머로 보는 신도시의 풍경에 익숙하지만 여행자의 입장이 되어서 보면 과연 무엇이 다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겉보기에 평범한 이 신도시의 속살을 과감하게 파해쳐 보려고 한다.

올림픽도 개최하고, 소득과 인구가 성장하면서 산업화가 완전히 자리잡고 경제가 제 궤도에 올랐던 1980년대, 양적으론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서울집중화로 인해 주택난과 투기열풍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뛰었고, 전문 투기세력인 이른바 “복부인”도 가세하자 일반 서민들의 피해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집값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더 이상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정부는 평촌과 중동, 산본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결국 노태우 정부는 1989년 4월, 획기적인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한다. 서울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성남의 분당신도시와 고양의 일산신도시다.

원래 일산은 북한과 비교적 가깝고, 대부분이 농지에다가 장마철마다 홍수의 피해가 극심했던 지역이기에 신도시의 가능성이 별로 없던 동네였다. 그래서 처음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을 때 아파트를 방호벽으로 사용해 전시에 입주민들을 방패막이로 쓴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당에 이은 두 번째 규모로 우여곡절 끝에 조성되 지금은 신도시를 상징하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일산 신도시는 우리나라 도시계획 최초로 택지를 개발할 때 가급적 자연 경관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으로, 호수공원과 정발산공원 등은 일산을 쾌적한 신도시로 만든 대표적인 녹지공간이다. 특히 호수공원은 이후 신도시가 생길때마다 수많은 호수공원의 롤 모델로 자리잡을 정도로 조경과 시설이 잘되어 있고, 단순히 공원을 넘어 일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일산신도시 조성으로 1990년대 중반 집값이 안정화가 되었지만, 지하철등 기반시설이 건설되기 전에 입주를 시작해 초기 입주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어야 했고, 주택위주로만 도시를 건설해 이후 백화점과 쇼핑타운이 들어서기 전까지 베드타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도 듣기도 하며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아파트를 짓다보니 설계와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이다.

하지만 이제 신도시가 건설된지 벌써 수십년이 지났다. 그 당시 건설되었던 수많은 아파트들이 낡아 재건축을 기다리고, 지나가는 지하철도 꽤 긴시간을 돌아 서울로 들어가기에 통근길은 자연스레 길어지며 어느덧 후배격인 2기 3기 신도시의 등장으로 존재감이 예전같지 않지만,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로 도시의 흔적을 남기면서 일산신도시도 단순히 서울근교의 아파트촌이 아닌 당당한 하나의 도시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고양에 속해있지만 그 정체성을 찾아 고양과 일산의 연결고리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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