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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Nov 26. 2020

경기 유랑 강화도 편 3-5

강화읍, 강화도의 중심

이제 다시 북문길을 따라 멀리 성공회 강화 성당을 바라보며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역사의 도시 강화답게 평범한 아파트도 벽화가 그려져 있어, 가는 길을 더욱 즐겁게 만든다. 강화문학관을 지나 언덕을 오르다 보면 북문길 사이로 왼쪽엔 천주교 강화성당과 오른편엔 강화초등학교가 있는데 어느 동네에나 있는 평범한 성당과 학교라고 보기엔 여기는 강화읍이니깐 뭔가 다를까 싶어 곁에 있는 안내판을 천천히 읽어본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숫자는 자그만치 1896이라는 숫자다. 순간 내가 1986을 잘못 적었는지 의심했지만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학교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개혁인 갑오개혁이 실시되면서 그 일환으로 전국에 지방 공립 소학교를 설립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 강화초등학교다. 조봉암선생을 비롯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며, 강화에서 처음으로 3.1운동이 일어나기도 한 장소라 단순한 초등학교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만만치 않은 강화의 내공은 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천주교 성당에서 계속된다. 강화와 천주교의 인연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인데, 철종의 할머니인 송마리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강화에서 순교했다. 강화성당은 조선시대 강화부의 진무영(경기연안을 수비하기 위해 강화읍내에 두었던 진영)으로 주로 여기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진무영 순교성지로 바뀌어 기념관과 비석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1930년대에서 70년대 까지 강화는 100프로 목화솜으로 만든 천연 면직물인 소창(기저귀)로 유명한 시기였다. 이때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 4천여명의 권익을 위해 노동사목이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다. 결코 평범한 성당이라 보기 어려운 이유다.


강화읍의 의미있는 장소들을 두루 살펴보며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고려궁지의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강화읍의 여행도 반환점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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