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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Dec 09. 2020

경기 유랑 강화도 편 8-2 (곤릉, 석릉)

적막 속 고려왕릉

다음 답사지인 곤릉과 석릉은 진강산 기슭 1km 정도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데, 가는 길이 정말 수월치 않은 장소라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도 고려왕릉이고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이기에 최소한의 안내판과 길은 잘 닦여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차장은 물론 이정표 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먼저 석릉을 찾아가려고 내비게이션에 “석릉”을 등록하고 늘 평소와 같이 차를 몰고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그 도착지는 하필이면 철문으로 굳게 잠긴 채  빨간 글씨로 ‘여기는 군 사격장이니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군부대의 근엄한 표지판만 눈에 띄었다. 설마 문화재가 군부대 사격장 내에 위치할 수도 있나 하는 황망한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왕릉이라서 담당자가 목적지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도를 찾아서 세세하게 살펴보니 석릉과의 실제 위치와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곤릉이 가까워 먼저 그 장소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가는 길이 수월치 않았다. 차로 접근하기 힘든 농로길이라 차를 인근 교회 앞에 세우고 지도를 차근차근 살펴보며 조심히 곤릉을 향해 다가갔다. 왕릉을 향해 가려면 민가의 담장을 끼고 지나가야 하는데, 덩치가 큰 시골 개의 짖는 소리가 유독 사납고 매섭다. 나 자신이 좋아서 찾는 장소긴 하지만 방문객을 이렇게 불친절하게 맞아주는 경우는 처음이다.

농로를 지나 어느새 호젓한 숲길로 들어서니, 그나마 있었던 표지판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철조망과 함께 이곳은 사유지라는 큰 글씨로 쓰인 팻말만 우뚝 서서 가던 길을 막고 있었다. 군부대 사격장에 이어 또 한 번 발길을 돌려야 해야 하는 황당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어렵게 온 길이라 여기서 발걸음을 돌리기엔 무척 아쉽다.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혹시 내가 길을 잘못 들지 않았는지 혹은 다른 방도가 있는지 가본 사람들의 블로그도 차근차근 찾아보았다. 가봤던 사람들의 말로는 사유지 철망 옆으로 지나가면 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표지판을 차근차근 읽어보니 사유지라는 표지만 있을 뿐 오는 것을 금지한다는 말은 없다. 그렇다. 여기가 맞는 것이다! 철조망 옆으로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어 바로 통과한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고, 낙엽만 수북이 쌓여있는 산길을 걸으며 한참을 올라간다.

그 길의 끝엔 왕릉이라고 하기엔 다소 초라한 곤릉의 봉분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고려 22대 강종의 왕비 원덕태후 유 씨의 릉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봉분이 붕괴되고, 석축이 무너져있던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가릉은 그나마 묘역이 넓어 왕릉으로서 최소한의 위엄이 있었지만 초라한 봉분만 남긴 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래도 무사히 먼길을 돌아 여기까지 찾아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호젓한 산길을 걷고 개의 짖음도 한번 더 감상한 후에 지나쳤던 석릉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석릉은 산을 넘고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힘든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마을의 끝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진강산의 산세를 따라 30분 가까이 걷고 또 걸어 산을 넘고 인적 드문 산길을 따라갔다. 등산객 하나 없는 산속을 헤치고 나아가 표지판을 보면서 조심스레 걷고 또 걸으니 고려 21대 왕 희종이 묻혀있는 석릉에 도착했다.

희종은 무신 세력이 정권을 잡고, 최충헌을 중심으로 전횡을 휘둘리는 상황 속에서 왕위에 즉위해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던 왕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해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와 영종도 여기저기를 유배지를 이동하다가 죽고 여기 깊숙한 산속에 안식처를 마련한 것이다. 그래도 왕이 묻혀있는 왕릉이라 석축이 3단으로 남아있고, 나름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모셔져 있었다.

초라한 고려왕릉을 살펴보며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고, 고려의 왕실 권력이 땅 밑으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지만 현대에 와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는 길도 쉽지 않고, 막상 가서도 초라한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한에 있는 고려왕릉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시금 새길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기에 더욱 많은 관심들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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