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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Dec 11. 2020

경기 유랑 강화도 편 9-1

강화의 진과 보 그리고 돈대

강화의 수많은 명소를 다 돌아보진 못했지만 이 장소들을 제외하고는 발자취를 남기긴 했다. 강화의 바닷가를 따라 늘어서 있는 강화의 진과 보 그리고 돈대 등 방어 요새가 바로 그 장소다. 서울로 가는 중요한 요충지이기도 하고, 특히 세곡선이 다니는 주요 지점이었던 섬이라 조선시대 무려 65개의 요새를 섬의 해안선 지점마다 설치하였다. 실제로 19세기말에 들어와서 프랑스와 미국 등 서양세력의 침입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던 역사의 아픔을 간직 할 수 있는 장소라 할 수 있겠다.

강화 여행의 마지막은 돈대, 보, 진 유적들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강화의 정체성을 다시금 상기시켜보고 앞으로 강화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물론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모든 유적들을 돌아보진 못한다. 북한과의 경계지점에 있는 북쪽의 요새들은 지금도 군부대나 민간인 통제를 하는 장소도 있고, 시간상의 제약으로 인해 수십개를 전부 돌아보는 것은 작은 것에 집착해서 큰 것을 놓치는 꼴이라 생각된다.

진과 보 돈대는 실제로 가보면 무슨 차이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명칭을 달리 했으리라.... 실제로 진부터 그 명칭에 대해 알아보면 진압할 진을 뜻하므로 제일 요충지에 자리하면서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에도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보는 작은 성 보라는 뜻으로 진 다음의 위치를 지니며 주로 방어에 집중한 구조로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돈대는 도드라지게 나온 지형을 말하고 멀리바라다 보이는 지형에 설치되어 주로 감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돈대는 보나 진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 정도로 차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수많은 진과 보중에 어디를 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강화와 김포사이에 위치한 해안가엔 집중적으로 유명한 진과 보가 설치되어있다. 서울로 향하는 주요 통로 이기도 했고, 그 폭이 좁아 염하라고 불리기도 했던 지역에 실제로 프랑스와 미국이 집중적으로 침략을 자행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 지역엔 우리가 아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는 물론 연미정으로 유명한 월곶돈대와 갑곶돈대 까지 관광지화 되어있고, 규모가 큰 요새유적이 두루 분포해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보와 진, 돈대가 많긴 하다. 굳이 한군데를 더 선정해서 함께 가게 되었는데 강화를 대표하는 동막해변이 강화 남쪽 영종도를 굽이 보며 뻗어있다. 거기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반도같이 조그맣게 뻗은 지형이 나오고 분오리 돈대라는 요즘 일몰 명소로 뜨고 있는 관방 유적이 나온다. 비록 전부 가지 못하지만 요새 유적들을 탐방하며 강화의 역사적 의미와 그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여행을 떠나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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