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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Dec 17. 2020

경기 유랑 강화도 편 9-5(갑곶돈대)

강화의 진과 보 그리고 돈대

힘들지만 뿌듯했던 광성보를 지나 잠시 식당에 들러 허기를 달랜 후 북쪽으로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달려가 본다. 5진 7보 53 돈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안선을 따라 끊임없이 늘어서 있는 수많은 요새 유적들이 강화도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북쪽으로 오두돈, 화도 돈, 용당 돈 그리고 용진진이 있지만 시간상의 한계로 인해 무심하게 지나치고 만다.

강화도 남쪽 초지대교에서 시작된 관방유적 순례길이 어느덧 강화대교를 눈앞에 두고 갑곶돈대에 도착하게 되었다. 원래 강화 박물관이 있었던 자리로 지금은 전쟁박물관으로 명패만 바뀐 채 갑곶돈대 입구에 들어서 있다. 굳이 강화 박물관을 관람한 상태에서 비슷한 주제의 박물관을 본다는 건 피로감만 느껴지고, 빨리 갑곶돈대로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서둘러 달려간 갑곶돈대는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무슨 날림공사를 한 것 마냥 전체적으로 복원을 잘못한 것 같았다. 유료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차량 차창 너머로 지나친 용진 진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게다가 뒤편 조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 섭정이라는 정자는 농촌 한가운데 있는 정자처럼 콘크리트와 페인트칠로 덮여 있었고, 정작 올라가서 본 전망도 생각보다 시원치 않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져온 리플릿을 차근차근 읽어보니 1976년 강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갑곶돈대 일대를 재정비했다고 쓰여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확 스쳐 지나가면서 어떻게 갑곶돈대가 원형을 잃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특히 이순신, 강감찬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위인들을 성역화시키면서 관련 유적들을 성역화시키며 재정비를 하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한옥 콘크리트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기한 양식의 건물들이 일제히 들어서게 되고, 현충사와 삼별초 유적 등 아직도 건물들에 대한 논란이 많다.

민족의 자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관방 유적인 갑곶돈대도 그 대상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옥 콘크리트 양식의 박물관과 정자, 그리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성벽들을 언젠가 뜯어서 원형 그대로 다시 복원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래도 갑곶돈대 한편엔 400년이 넘은 탱자나무가 향긋한 오렌지향을 풍기며 탱자들이 탐스럽게 열려있어서 인상 깊은 볼거리였다. 특히 강화도 곳곳에 탱자나무가 많이 심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성벽 밑에 심어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제 갑곶돈대를 넘으면 북쪽이 바라다 보이는 장소로 향하게 되는데, 민통선을 넘어가야 하는 만큼 긴장도 되지만 새로운 설렘과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강화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민통선 너머로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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