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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Dec 27. 2020

경기 유랑 부천 편 2-1(부천 박물관)

판타지아 부천

한때 박물관이 많은 도시를 타이틀로 두고 있던 부천은 특히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을 부천 종합운동장 하부시설에 대거 유치하면서 부천의 정체성을 새로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석, 유럽자기, 교육 박물관을 부천시립박물관이라는 시설로 새로 욺 기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려 2020년 9월에 개관할 예정이었지만 예정에 없던 역병이 퍼지고, 기약 없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부천의 수많은 박물관들을 못 간 아쉬움이 있지만 그나마 옹기박물관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예전 시골을 가면 마당에 옹기종기 서있는 항아리들을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를 텐데 정작 부천과 옹기가 무슨 연고가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고 보니 박물관이 있던 여월동은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생활용기를 굽던 곳으로 현재는 가마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박물관에서 그때 당시 번영했던 옹기 마을의 흔적들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마침 1층에 부천 향토역사관이 있어서 부천의 몰랐던 역사들을 하나씩 배워간다.

부천은 한강유역에 위치한 지리적 요충지로 고대부터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움직임이 있던 곳이라 한다. 3국이 차례대로 부천의 지역을 점령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명칭도 달라져 고려에서는 수주, 안남 도호부, 계양 도호부, 길주목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로 불렀다.

역사의 뒤편에 있었던 부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으로 소사역이 생기면서 교통이 발달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이 부천지역으로 유입되고 복숭아 과수원들이 생기면서 마을이 발전되고,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한때 부천의 별칭 중 하나가 그래서 복사골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1924년에 부평의 부자와 인천의 천자를 따서 부천군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광복 이후 경제개발 계획이 실시되면서 부천은 공업화가 이뤄지며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1967년 경인고속도로 완공 후. 1973년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었고 특히 1974년 경인선 전철화로 서울로의 시간 거리가 단축되었다. 그와 더불어 부천이 현재의 이미지로 고착되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중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급격한 인구의 증가가 이뤄지게 되면서 100만 가까운 대도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부천 향토역사관에서 부천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고, 2층의 옹기박물관에서 옹기를 실컷 보고 나니 아파트만 알고 있던 부천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부천의 여행도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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