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1년 여름쯤에 써둔 글입니다. 우리 집에 코로나가 찾아온 2021년 삼일절... 1년이란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코로나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디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기를 바래봅니다.
새벽 2시에 울린 전화 한 통으로 우리 집 진짜 팬데믹은 시작되었다. 보건소에서 온 전화였다. 직원은 큰 아이가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왔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내게 했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감염되었다고 한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뉴스에서 보던 일이 정말 내게도 일어나다니....... 아이가 다닌 태권도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아이는 4차, 5차쯤 되는 집단 감염의 피해자였다.
2020년도 초에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나는 워킹맘으로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조차 몇 달이나 연기되었고, 아직 어린아이를 홀로 집에 남겨두고 눈물로 출근해야만 했다. 매일 하루하루 긴장 속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더 조심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도 아이를 외부인으로부터 철벽 방어했고, 늘 손 소독제를 가지고 다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조심에 조심을 더하며 살았는데, 아이의 하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보내기 시작한 태권도에서 아이는 결국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로 물 컵조차 태권도에 비치되지 않아 물조차 마시지 못했다는 아이였기에,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피해가지는 못했다. 아이의 학교 밴드에 학교 근처 태권도장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다른 엄마들의 불안감과 불만 섞인 글들을 읽어가면서 나는 바닥에서 더 깊은 지하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온몸이 바이러스 덩어리인 것처럼 취급을 받았다. 우리가 지나가는 곳 어디서든 사람들은 방호복을 입고 있었고, 유리벽을 마주 보고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이다스의 손이 닿는 것은 모든 금으로 변했지만, 우리의 손이 닿는 것은 모두 누구의 손도 닿아서는 안 되는 폐기물로 분류되었다. 아이와 함께 시작한 생활치료센터에서 나까지도 양성 판정을 받았고, 내 증상이 심해져서 아이와 함께 음압 병동으로 갔다.
코로나 양성 판정 후 열흘이 지나면, 병원에서는 전염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을 하게 한다. 병원에서는 이제는 괜찮다며 일상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정작 돌아가야 할 곳에서는 아직은 빠른 게 아니냐며, 다시 밀어낸다. 음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음성도, 양성도 아닌 중간에 낀 상태가 되어버린다.
시간은 흘러서, 이제 PCR 검사를 하면 음성이 나온다. ‘COVID19’라는 질병은 완치되었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인모를 다른 질병으로 육체적인 통증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받은 상처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점점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똑같이 걱정해야 하는 것인지, 나와 우리 아이로 인해 코로나 확진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며 고백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가 확진된 그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코로나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코로나 가해자가 된 이후에는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