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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Mar 11. 2022

나의 행복 시간

타인이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

   내가 가장 행복한 때는 커피와 책이 함께 하는 시간이다. 이른 아침이든, 늦은 밤이든, 혹은 새벽이든 시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 손에는 따끈따끈한 커피 한 잔과, 읽을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 커피의 취향은 카페라떼로 정해진지, 15년이 넘어섰다. 요즘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듣거나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뭔가 잘못이라도 한 듯, 찔리기도 하지만, 내 커피 취향에는 변함없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지인도, 내 커피 정도는 알아서 주문할 정도이고, 단체 주문 때 모두 아메리카노로 통일된 상황에서도 내 커피는 자동으로 라떼였다. 커피에 관해서라면 이렇게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책에 관해서 나는 잡식이다.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지인이 추천하는 책,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 또 유명 유튜버가 추천하는 책, 자기 계발서까지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읽어가는 수준이다.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를 읽는 건 한심하다 하더라도, 또 XX작가 책은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이 많을지라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그냥 다 읽어간다. 다 읽기에 힘들 정도로 세상에 좋은 책들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어떤 책이 나에게 좋을지 고민하고 확인하는 시간에 내가 직접 읽고 판단하는 게 더 빠르다.


   한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곤 했는데, 아침마다 점점 더 눈뜨기 힘들어지고, 또 다른 할 일들이 생기면서 책과 커피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신랑이 아이들만 데리고 외출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재빨리 책 한 권 고르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사서 온다. 몸이 아파서 온종일 누워있다가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기운이 솟아나서, 커피와 책을 찾아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가족의 시간이 다가오면 내 몸은 침대로 들어가 꺼지기도 한다.


   커피와 책을 위한 시간을 사수하기 위한 나의 작전은 매일 몸부림에 가깝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두 아이 준비시킨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가방도 챙기고, 요즘엔 도시락까지 챙기면서 재빠르게 집안을 스캔한다. 집안 정리를 하면서, 틈나는 대로 싱크대에 있는 접시를 하나라도 더 씻어 둔다. 아이들을 깨우면서 이불 정리를 하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면서 얼굴에는 화장품 하나라도 더 바른다. 쌀을 씻으면서 부엌을 정리하는 건 기본이다.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마이너스의 손이지만, 설거지는 마무리해놓고, 크게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은 좀 가려놓고, 아이의 저녁 식사 준비해놓고, 아이가 혼자 공부할 것을 문제집에 페이지 표시까지 다 해놓으면 출근 전 임무 완수이다. 숨 좀 돌리면서 하면 보통은 11시가 넘어야 일이 끝난다. 어떤 날은 12시가 되어도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허겁지겁 집을 뛰쳐나가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이런 날이 있다. 아이들이 평소보다 재빨리 다 하고, 잔뜩 쌓여있는 빨래를 알아서 정리를 해준다거나, 설거지가 조금밖에 없다거나, 내 손을 거치지 않아도, 모든 게 다 잘 정돈되어 있다. 그런 날이면 10시부터 12시까지는 내게 자유시간이다. 출근 전에 어딘가로 가야 할 일이 없을 때, 뭔가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없을 때, 정말 내 마음대로 실컷 쓸 수 있는 2시간이 있을 때, 읽고 싶었던 책이 있는 날에는 책을 읽고, 혹은 사고 싶은 책을 사러 알라딘으로 향하기도 하고, 도서관으로 가기도 한다. 빨리 책을 선택해서, 근처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출근 전에 책과 커피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날에는, 책은 마음의 양식뿐만 아니라, 몸의 양식이 되기도 한다. 따로 점심을 챙겨 먹지 않아도, 속은 든든하고, 몸과 마음은 동시에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가끔은 책을 고르다 심취해서, 정작 책은 읽지도 못하고 그냥 출근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책을 고르다 근처 다른 것에 빠져서 실컷 구경하고 놀다가 출근 시간이 임박해서야 출근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책을 읽지 못해도 기분은 여전히 좋다.


   일터에는 늘 사람이 북적거리고, 또 집에 오면 아이들로 정신없다. 조금 편히 있고 싶어도, 나를 계속 쫓아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맘 편히 쉴 수도 없다. 어쩌면 책과 커피는 하나의 핑계일 수도 있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애정 할 수도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책과 커피가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아침 10시에서 12시 사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 고요하게 보낼 수 있는 달콤한 시간, 타인이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 그 시간이 있기에 직장으로 출근하고,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투잡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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