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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Nov 20. 2024

특별한 주말

소아일체: 소파와 나는 한 몸입니다

   1년에 2번 정도 3주 연속으로 토요일에 출근한다. 이렇게 해온 지 벌써 몇 년은 지나서 익숙할 때가 되었음에도 해마다 늘 새로운 기분이다. 시간 되면 출퇴근하듯이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지 않는다. 일 년에 최소 6번 이상 하는 토요일 출근이지만 출근을 할 때마다 새롭다.


   아이들 아침 식사와 점심, 저녁까지도 대충 미리 아침에 준비를 다 해놓고 집을 나서야 한다. 아이들 식사 준비와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다가와서 정작 나는 아무것도 입에 대질 못하고 출근하는 길에 뭐라도 사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출근하면 좀 더 여유 있고 싶지만 평일보다 더 정신없다. 최소 6시간 동안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 일한다. 출근하면서 산 라지 사이즈의 커피 힘도 3시간이면 다 떨어져 버리고 결국 후반부 3시간은 또 다른 음료의 힘을 빌어 버틴다. 그때쯤이면 신경은 초예민 상태라 눈에 뵈는 게 없다. 보고 싶은 게 눈앞에 있어도 그 장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귀는 예민해져서 평소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약간 과장을 하자면 주변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다.


   6시간을 보내고 나면 초토화된 풍경이 펼쳐진다. 마시고 난 컵조차 처리할 힘도 없다. 결국 그 상태로 내버려 두고 어딘가에 쫓기듯 빠져나온다. 모든 건 내일의, 아니 월요일의 나에게 다 미룬다. 아주 약하게 남아 있는 힘과 귀소본능 덕분에 간신히 집으로 들어간다. 돌아오는 길에 어디선가 멈춰서 그 자리에서 내 기력이 회복할 때까지 버티다가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순간이 종종 다가오기도 한다.


   주말 출근하고 나면 내 몸의 모든 에너지가 다 증발해 버린 느낌이다. 분명 출근 전만 하더라도 에너지는 충만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오늘 하루 버틸 수준은 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내 안의 기운은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도로 반감을 한다. 중간중간에 각종 음료나 군것질로 에너지를 조금씩이라도 채워가며 버틸 대로 버텨야 6시간이 간신히 지나가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도 그 흔적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다. 엉망이 되어버린 집을 바라보며 치울 힘도 없고, 치워야 한다는 인식조차 못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을 안기는커녕, 아니 안아주는 시늉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언가 내 입안에 마구마구 집에 넣어서 다 떨어진 에너지를 음식으로 조금이라도 복원시키려 한다. 어느 정도 위는 채웠지만 아직 마음을 채우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배달 음식이든 식당이든 어딘가에서 날 위로해 줄 음식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이번엔 집에 도착하니 좀 더 다른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이들은 남편과 외출해서 집안은 텅 비었다. 집도 내가 떠날 때와 비교해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나는 아침에 먹다 남은 유부 초밥 1.5인 분을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삼켰다. (먹은 게 아니라 이건 분명 삼킨 것이었다.) 배는 부르지만 무엇을 더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기다리며 과자를 한 봉지 먹었다. 과자 한 봉지를 다 먹고 나서도 무언가를 또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뭘 먹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주말 출근을 하고 나면 쉬고 있어야 할 시간에 나가서 평소보다 더 힘들게 일했다는 사실에 나에게 위로의 음식을 주고 싶어 한다. 내 위장은 설령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상관없이 무언가를 원한다.


   거실에 있는 소파와 한 몸이 되어서 꼼짝도 안 하고 누워서 과자를 집어 먹으면서 한쪽에 책도 펴놨다. 빨리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계속 같은 줄만 반복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모처럼 아이들도 없고 아이들 저녁 준비해야 할 걱정도 없는 날이다. 내가 꿈꾸는 시간이기에 이 때면 보통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하는데 나는 책 한 페이지 읽기도 버거웠다. 눈동자도 움직이기 힘든지, 나는 계속 같은 곳만 보고 있었다. 글자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책에 있는 글자는 정말 거의 잘 안 보이고 폰에서는 약간은 보이긴 하지만 제대로 와닿질 않는다. 계속 그렇게 버티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계속해서 소파와 한 몸이었다.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는 시간이 될 때까지 소파에 누워서 소아 일체(소파와 나의 몸은 한 몸)를 경험했다.


   나처럼 소파와 한 몸인 남편들을 비난하는 다른 이들의 톡을 봤던 것 같은데 나 또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분명 보기 흉한 모습임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침대로 들어가 편히 누워버리면 그만 일 텐데 왜 굳이 소파를 택해서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누구도 소파에 누워 있으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리 버티고 있는 것인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아하는 주말, 황금 같은 시간에 나는 일한다는 이유로 집을 오랜 시간 비웠다. 아이들이 주말에는 같이 있고 싶다며 눈물을 흘림에도 매정하게 집을 나서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안고 뒹굴뒹굴 놀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데 내게는 그럴 힘이 남아 있질 않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방문을 닫고 있는다면 아이들의 하루에서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방이 아닌 거실을, 침대가 아닌 소파를 향한다. 최소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말이다.


   주말에도 출근하고 나면 내 몸도 마음도, 집도, 그리고 내 일터마저 모든 게 다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도대체 누굴 위하여 주말에 출근한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주말에 출근하고도 평일과 별 다를 바 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저, 평범한 하루처럼 부디 느껴지기를.  



추신.


위 글은 2년 전에 쓴 글이다. 그 이후 여전히 일 년에 몇 번씩 주말 출근을 한다. 일하는 시간은 좀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때와 '같음'의 상태이다. 언제쯤이면 이 글이 아련한 추억처럼 다가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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