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이 엄마

내 생애 첫 기억

by 유희

서울올림픽이 열릴 무렵이었을 게다. 서울 변두리, 한 연립 주택 지하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았다. 아마 내가 두 돌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어렸기에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그 집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신다. 맞다. 단칸방이고, 지하였던 것만 기억난다. 그 집엔 화장실이 있긴 했는지, 부엌은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가족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그 집에는 다락방이 하나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그곳은 아빠 공장이랑 가까웠다. 아빠가 점심때면 집으로 와서 식사를 함께 했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아빠를 쫓아갔다. 아빠를 엄청 따랐기에 처음엔 다시 회사 가지 말라고 쫓아가곤 했는데 늘 우리 집 골목 끝 부분에서 멈췄다. 골목 귀퉁이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빠가 50원짜리 쭈쭈바를 하나 사주면 냉큼 받아서 집으로 뛰어오곤 했었다. 처음엔 우는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서 아빠가 사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중엔 쭈쭈바 하나 얻어먹으려고 아빠보다 먼저 뛰어 나갔다.


듬성듬성 앞뒤가 맞지 않는 기억이지만 나의 첫 번째 집, 나의 아주 어린 유년기 기억들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단칸방 옆에는 양순이 엄마가 살았다. 양순이가 내 친구였는지, 아니면 언니 친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양순이 엄마로 나는 기억할 뿐이다. 실제 이름도 아마 다른 이름이었을 게다. 그 집에 살던 아이는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그 아줌마를 기억하는 건, 텁텁하고 쓰기만 했던 약 때문이다.


서울 휘경동, 청량리 인근에 위생병원이 있었다. 높은 곳에 있던 그 병원은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운 좋게도 택시를 타는 날이면 병원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접수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 진찰을 받은 후 받아온 가루약을 수저에 올리고 물을 살짝 넣은 다음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엄마는 내게 먹으라 했다. 보기에도 이상해 보이는 약을 내가 한 번에 입안에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엄마는 내 입을 억지로 벌리고 넣으려다가 약을 거의 다 쏟아버렸다. 결국 수저에 살짝 묻어있던 약을 먹었는데 그것도 맛이 영 아니었지만 약을 다 먹지 않았으니 어쨌든 내 승리였다.


태어나자마자 한 고집 했던 나는 며칠 연속 계속 엄마를 이겼다. 엄마는 나에게 약을 먹일 때마다 지쳤고 결국 옆집에 사는 양순이 엄마를 불렀다. 그 엄마는 우리 엄마랑 달랐다. 인상 쓴 얼굴로 나에게 먹으라고 강요를 했다. 내게 소리는 질렀던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얼굴 표정은 여전히 기억난다. 그때 기준으로 정말 험악했다.


결국 나는 졌다. 텁텁하고 쓴 약 맛이 익숙해지고 내가 약을 잘 먹기 시작한 그 이후로 양순이엄마가 아닌 엄마가 내게 직접 약을 먹였다. 가끔씩 약을 거부할 때면 엄마는 다시 양순이엄마 이야기를 했고 나는 울며 약을 먹었다. 약은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넘도록 계속 먹었다. 식사 후 먹는 약이 내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거의 1년을 넘게 먹었던 약은 단칸방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도 먹다가 어느 순간 끝이 났다.


어딘가 아프니 약을 먹었겠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오래 먹은 것인지 이해되지 않아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가 학을 떼며 말한다. "네가 좀 별났어야지. 일주일에 경기를 두 번 일으켰어. 두 번이나. 의사가 일주일에 경기 두 번 일으킨 애는 네가 처음이라며 놀랐다니까." 일주일에 경기를 두 번이나 일으킨 문제아인 나는 추가적인 문제(?)를 막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약을 먹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약 안 먹으면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엄마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나를 그 큰 병원까지 데려가곤 했던 것이다. 노란 플라스틱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가지고 놀면서 전광판에 내 번호가 뜨길, 내 약이 나오길 기다리던 기억이 여전하다.


위생병원은 도로에서 좀 떨어져 있고 주변에 나무가 많았지만 병원 안은 약품 냄새로 가득했다. 링거 냄새와 베지밀 마시고 토한 냄새가 뒤섞였다. 엄마가 사준 베지밀이었을까, 아님 입원해서 먹은 베지밀이었을까. 베지밀 먹고 토했던 기억까지 뒤죽박죽 된 그곳에서 몇 시간을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어김없이 멀미를 하곤 했다. 병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였지만 높은 곳에 있는 병원을 향해 걸어 올라가던 길도, 병원 냄새에 복통을 일으키곤 했던 내게 병원 가는 날은 지옥 같은 날이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2일 오전 01_42_01.png chatGPT가 그려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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