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똘이장군이라는 만화를 신나게 본 기억이 있다. 김일성은 돼지고 북한군은 늑대로 묘사되며 어린 영웅인 똘이장군이 북한의 인민을 해방하고 김일성과 북한 공산당을 무찌른다는 신나는 반공 영웅 소년의 이야기였다. 반공, 혹은 멸공을 외치던 그 시절, 가족과 본인이 다 죽었다는데 공산군이 전해줬는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용감하게 말하고 입이 찢어져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신기하게 전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승복 어린이를 본받아야 할 어린이로 배웠던 어린 나에겐 똘이장군은 악당을 무찌르는 소년 영웅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선악의 단순 구분으로 이념을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어럴적 기억 또한 어떻게 조작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이념을 권력의 도구로 삼았던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결국은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이념 자체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었다는 것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이 조금 더 나은 지금의 역사를 만들어왔으며 자유와 평등 사이의 고민은 지금도 우리가 끊임없이 짊어지고 가야할 사회적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논란이 사회적 이슈화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가장 상류층인 대기업의 회장이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입장 아닐까. 하지만 너무도 솔직한 그 멘트에 그 솔직함에 감탄하기보다는 도대체 무얼 바라고 그런 멘트를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먼저 생긴다. 신세계가 상위 1%만을 위한 기업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많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이마트와 같은 유통업체에서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인 것을 생각하면 그 솔직한 용감함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깊이있는 고민에서 나온 말같지는 않다. 본인이 70~80년대를 사는 소년이 아니고 2022년을 사는 대기업 부회장인데 똘이장군을 동경하는 소년의 정신세계를 가지고 할 법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경제 체제의 극한대립이 철지난 냉전시대의 무의미한 갈등일뿐 이제는 그 절충으로 이루어진 수정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의 현실임을 정말 모를까? 우리 사회이 대부분의 복지 이념은 사회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던 것이며 사회 공산주의 사회가 몰락했음에도 아직도 이념적으로 사회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자유 자본주의의 체제를 융합시켰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 전문가가 아니어도 기본적 소양이 있으면 알 수 있는 현실이다. 한국전쟁을 겪고 냉전시대를 지나오며 많은 희생을 치르고 우리는 두 이념의 합리적 부분을 선별해서 적용하는 지혜를 이제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아직까지도 과거 이념의 망령에 사로잡혀 비생산적인 이념의 편가르기로 갈등하며 싸우고 무의미한 희생을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분단의 현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아직까지도 개인의 권력 쟁취를 위해 우려먹는 정치인들을 보며 환멸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누군가 아무리 달콤한 말로 유혹한다고 해도 나는 사회 공산주의 혁명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기업 회장이나 정치인이 멸공을 외치기 때문이 아니라 개선할 점이 있다고 하지만 체제적으로 북한보다 대한민국이 훨씬 더 나은 사회이며 부족한 부분은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사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으며 이미 실패한 사회체제를 주장할만큼 우리는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부회장이나 정치인들이 반공이나 멸공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만 불안하기 때문은 아닐까. 사회 누구도 혁명이 일어나 지금의 대한민국이 뒤집힐 것이라는 생각으로 불안하지 않은데 그들만이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빼앗길까봐 아직도 두려운 것은 아닐까? 영원히 이러한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길 바라고 기득권층으로 영원히 남고 싶기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논의를 말살해버려야 할 불온한 생각으로 색칠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일부 정치인들이 대기업 부회장의 말을 받아 견강부회하며 멸공을 릴레이 켐페인처럼 지지율이 낮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키워드로 삼고 있다. 플라톤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은 국민들이 받는 가장 큰 징벌은 자신보다 저열한 이들에게 지배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멸공이 사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인지 잘 살펴야 저열한 이들의 얄팍한 술책에 지배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정말 멸해야 할 것은 철지난 공산주의가 아니라 아직도 예전처럼 갈라치기로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을 눈속임하여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그들의 오만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