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들은 장난감이 물위에 떠다니는 것을 보기 위해 물동이 주변에 둥글게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당시 학교에는 태어난 지 2년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원 밖에 떨어져 있었고,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멀리 떨어져서 그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힘이 부족했어요. 그러다가 아이는 멈추어 서서 주변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이의 작은 얼굴에 담긴 표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사진기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한 게 너무 아쉬울 정도였지요. 아이의 눈이 작은 의자로 향했습니다. 의자를 아이들 뒤에 놓고, 그 위로 올라서기로 결심한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의자를 향해 움직였습니다.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가득했어요. 하지만 그 순간 교사는 아이의 팔을 붙들고 다른 아이들의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이것 봐. 이제 너도 볼 수 있어!”
물 위에 떠다니는 장난감들을 보기는 했지만,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장난감들을 보는 것은 아이에게 이득이 될 수 없었겠지만, 지적인 노력은 아이 내부에 있는 힘을 발달시켰을 것입니다. 교사는 어떤 보상도 주지 않고 아이를 방해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배우는 기회를 빼앗긴 것이지요. 그 작은 친구는 자신이 정복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두 팔 안에 갇힌 채로 무력감을 느꼈을 거예요. 제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던 기쁨, 불안, 희망의 표정이 아이의 얼굴에서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아이의 얼굴에는 자신의 일을 빼앗길 것을 안다는 듯한 무력한 표정이 남았습니다.
교사들은 관찰에 지쳤을 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도록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거나, 코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지만 아무도 아이들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밀치는 등 폭력이 발생해도 교사는 아주 작은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분명히 구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 주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훈육이 계속되려면 이와 같이 기초를 놓아야 하며, 처음에는 교사에게 힘든 시간이 될 것입니다.
교육자는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은 행동이라고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게 여기고 움직이는 것을 나쁘게 여기는 것은 낡은 시대의 교육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가 능동적으로 활동하며 해야 할 일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훈육은 활동과 과업, 선을 위한 것이지 아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 몬테소리가 직접 쓴
몬테소리 교육의 '기본서'
1870년 이탈리아에서 출생했다. 로마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26세에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었고, 소아 정신과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의 발달과 잠재력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07년, 몬테소리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의 집Casa dei Bambini’을 열고 본격적인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몬테소리는 아동 중심의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을 강조하였으며, 아이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하며 현재의 교육법을 정립하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세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오른 적 있다. 현재 몬테소리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는 전 세계 2만 2000여 곳에 이른다.
* 책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542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