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라 칭하며 본가로 내려가 철없는 백수 딸 행세를 할 때였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집 냄새를 한껏 맡으며 거실로 나왔다. 엄마, 아빠는 이미 출근했기 때문에 집안이 조용했다.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랜덤 박스를 개봉하듯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뚜껑 덮인 냄비나 프라이팬으로 향한다. 엄마와의 텔레파시 게임 같기도 했다. ‘제발 내가 오늘 먹고 싶은 거…’ 속으로 짧게 기도한 뒤, 개봉박두한다. 새까만데 빛이 났다. 이 모순적인 조합의 음식은 바로, 짜장이다. 기름으로 코팅된 고기와 야채들이 엄마를 대신해 모닝 인사한다. 카레는 종종 먹었었지만, 엄마의 짜장은 처음이라 조금 낯을 가렸다.
개탄스럽게도, 이때도 난 다이어트 중이었다. 짜장을 보며 떠올렸다. 당시에 유명했던 헬스트레이너가 꼽은 ‘다이어트 최악의 3대 음식’ 중 짜장이 포함된다는 걸. 세상 수많은 음식이 있는데 하필 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짜장 면이 아니고 밥이니까 괜찮아’. 죄책감을 한 스푼 덜어내고 작은 그릇에 짜장을 한 스푼 퍼 담았다. 역시나 서너 숟갈 먹으니 동나고 말았다. 아아- 엄마는 왜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걸까. 원망스러웠다. 다시 주방으로 가 짜장 앞에 섰다. ‘괜찮아. 양배추랑 양파도 많이 들었으니까’ 죄책감을 한 스푼 덜어내고 짜장을 한 번 더 퍼담는다. 결국 가득했던 간짜장의 반 이상을 먹었다.
몇 달 전, 마트 쇼핑을 하다 춘장을 발견했다. 더는 짜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는 그때의 그 맛을 회상했다.
엄마의 맛을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춘장을 집어 들었다. 집에 양배추, 양파, 돼지고기가 있으니 마지막 열쇠를 거머쥔 것이다. 장 본 식자재들을 정리하고 간짜장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각양각색의 조리 방법이 나온다. 그중 참고 할 레시피 찾는 팁을 주자면, 나는 완성 된 음식 사진부터 본다. 내가 원하던 모습과 흡사한 레시피를 찾는 거다. 일단, 국물과 전분기 없는 진한 짜장 사진을 찾는다. 그다음, 레시피를 보고 다른 레시피들과 비교한다. 비교하다 보면 완벽히 따라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
나는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용했다. 새끼손가락 두께로 썰고, 양배추는 열을 가하면 숨이 죽기 때문에 수북이 쌓일 만큼 작게 썰어준다. 나는 ‘양파 먹으려고 짜장면을 시킨다.’’ 할 정도로 짜장 속 양파를 사랑한다. 큰 양파 하나를 잘게 썰었다. 재료는 이 세 가지만(감자나 가지, 애호박을 넣어도 맛이 좋다) 넣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싶어 한 줌, 다진 마늘 반 스푼 넣어 달달 볶아준다. 마늘이 노릇한 색을 띠면 불을 세게 올리고 돼지고기를 넣는다. 설탕을 한 스푼, 간장을 한 스푼 넣어 볶다가 잘 게 썬 양파를 한 줌 넣어 같이 볶는다. 요리가 끝난듯한 맛있는 냄새가 올라온다. 고기에선 기름이, 양파에선 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구석에 공간을 내어 춘장을 두세 숟갈 넣어준다. 춘장은 기름에 볶아 줘야 하는데 따로 기름을 넣지 않아도 돼지기름으로 충분하다. 춘장이 돼지기름에 넘실대면 한데 모아 섞어준다. 맛을 보고 짜다 싶으면 간이 맞다. 남은 양파와 잘게 썬 양배추를 한가득 부어준다. 볶기 힘들 정도의 양이지만 금방 숨이 죽는다. 양배추와 양파에서 채즙이 나와 물을 추가 하지 않아도 된다.
친구와 사이좋게 오목한 그릇에다 밥 한 공기씩 담고, 갓 만든 간짜장을 퍼 담았다. 새까맣고 빛이 났다. 김이 폴폴 나는 게, 밤안개처럼 방해됐다. 고춧가루 톡톡 뿌리고 반숙으로 익힌 계란프라이를 올려줬다. 한 숟가락 푸니 큼지막한 고기가 두어 개씩 들린다. 원하는 재료만 왕창 때려 넣고 요리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 거다. 한 입 먹고 웃음이 났다. 서울에서 엄마가 해준 짜장 맛을 맛보다니. 더는 엄마와 텔레파시가 통할 때까지 짜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뒤이어 맛본 친구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다 하다 춘장으로 간짜장을 만들어 버리네.” 한 입 먹을 때마다 연신 미친 거냐 물었다. 친구의 반응에 웃고, 간짜장 맛에 웃었다. 요리 잘하는 엄마를 원망하던 나처럼 친구는 날 원망하며 밥을 추가했다. 마지막 한입 깨끗하게 비운 친구는 배를 통통거리며 간짜장의 여운을 느꼈다.
잘 먹어주는 친구에게 느끼는 마음은 집에 돌아와 반 이상 비워진 간짜장을 본 엄마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금기 음식을 과식했다는 죄책감과 후회로 자책하는 과거의 내 모습이 선명해 속상하다. 그리고 며칠 전, 친구에게 텔레파시를 받아 간짜장을 만들어줬다. 면을 사랑하는 친구라 밥 대신 소면을 삶아 주니, 면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짜장이 두려울 이유가 뭐가 있으랴? 잦은 친구의 텔레파시가 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