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외의 Dec 12. 2021

정통 카르보나라



밥, 빵, 면. 탄수화물 대표 세 가지 중, 내 먹성의 크기는 빵에 몰빵 돼 있다. 수많은 빵수니 중 한 명이었지만, 다이어트를 관두니 전만큼의 애정은 아니다. 다이어트 중에 ‘입이 터졌다’고 할 때도 밥, 면은 눈 밖에 나고 오로지 빵, 과자류의 디저트를 먹어댔다. 순위를 매겨 보자면 빵>>>밥>면 순이다. 여전히 밥양은 적은 편이고 메인 음식이나 반찬을 많이 먹는다. 면은 한 번에 많은 양을 후루룩 먹지 못하고 금방 포만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양식을 좋아하지만, 파스타보단 리소토(risotto)를 더 자주 만들어 먹었다. 아주 가끔 파스타가 땅길 때가 있다.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파스타면은 예전에 샀던 게 아직 남아있었다. 소스는 활용도가 좋아 늘 구비해두는 토마토소스 뿐이었다. 그러다 정통 카르보나라를 접하게 됐다. 면수, 치즈 가루, 달걀만으로 소스를 만들 수 있었다. 바로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끓는 물에 소금을 한 스푼 넣고 파스타 면을 삶는다. 10분 타이머를 설정하고 10분간 미션이 주어진 사람처럼 재료 준비를 하면 된다. 첫 번째, 마늘 몇 쪽을 편으로 썰고 베이컨 1~2줄(마늘과 베이컨 양은 취향껏)을 알맞게 썰어 준다. 두 번째, 소스는 달걀 한 알과 노른자만 하나 더 추가한다. 나는 파마산 치즈 가루 대신 그라나 파다나 치즈를 그라인더로 갈아 넣었다. 양은 대략 세 스푼 정도, 걸쭉한 농도를 봐가며 넣었다. 세 번째, 미리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타지 않게 중간 불로 편 마늘과 베이컨을 볶아준다. 마늘이 노릇해지면 면수를 한 국자 넣어준다. 곧이어 기막힌 타이밍에 타이머가 울린다. 미션 성공이다. 면을 건져 프라이팬에 넣고 마늘, 베이컨이 섞인 자작한 면수와 섞어준다. 이제 미련 없이 가스 불을 끈다. 그리고 방치한다. 프라이팬의 열기를 식혀 줘야 스크램블 에그가 아닌 카르보나라를 먹을 수 있다. 따뜻한 정도의 열기만 느껴지면 준비한 소스를 붓고 잘 섞어준다. 섞을수록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간다. 꾸덕꾸덕한 면은 젓가락을 돌려 모양을 잡아 그릇 중간에 담고, 팬에 남은 베이컨과 마늘을 그 옆에 올려준다. 그라인더로 통후추를 갈아 올리면 후추 향과 고소한 소스 향이 섞여 난다.


남은 뒷정리와 사진을 찍고 나서야 포크를 들었다. 식어버린 줄 알았지만 잘 섞으니 김이 모락모락 난다. 마늘과 베이컨을 사이좋게 포크로 하나씩 찍고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았다. ‘나 파스타 좋아했네’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베이컨 말고는 온통 노란 카르보나라는 짭조름하고 고소하다. 중간중간 씹히는 통후추도 묘미다. 노른자는 비린 맛없이 고소함만 남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파스타보단 카르보나라에 애정이 솟는다. 크림 파스타를 카르보나라로 칭하면 안 된다. 둘은 절대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신선한 날달걀이 들어간 소스는 시중에서 구매할 수도 없다. 요리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같은 음식이다.


나는 이 특권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기로 했다. 카르보나라를 해주겠다고 요리 못 하는 친구를 불렀다. 친구를 방으로 몰아넣고 나의 반려견 ‘애기’와 단둘이 놀이시간을 선사했다. 꾸덕꾸덕한 크림 파스타를 좋아하는 친구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방문 너머 애기의 삑삑거리는 장난감 소리를 들으며 카르보나라는 완성됐다. 그새 수척해진 친구는 요리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활기를 띠었다. 노란빛 파스타 위에 통후추가 뿌려진 카르보나라. 친구는 얼굴에 실망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셰프처럼 정통 카르보나라를 소개했다. “이게 진짜, 리얼 카르보나라라고. 일단 잡숴봐.” 의심쩍게 한 입 먹은 친구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음…’이 아닌 ‘음-‘ 소리였다. 나는 후토마키(일본의 김초밥) 대신 한국의 김밥을 소개하는 사람처럼 뿌듯해졌다. 친구는 첫 입과 달리 포크 질에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함께 먹는 게 아니더라도 좋다. 혼자 맛있게 해 먹었던 음식을 다시 만들어 나누는 일은, 예습과 복습을 끝마친 완전한 나의 요리가 된다. 친구는 잘도 먹으며 ‘어떻게 만들었냐’고 묻는다. 레시피를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맛있지?” 하고 그냥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운 채소 샌드위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