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 Happy birthday to me.
나의 계획적인 성격과 부지런함은 찌개와 부합한다. 어떤 찌개도 하루 전날 미리 끓여 둔 찌개 맛을 이길 수 없다. 오늘 저녁으로 미역국을 먹기 위해 어젯밤 주방은 불야성을 이뤘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내가 해조류를 거부감 없이 맘껏 섭취할 기회다. 냉동실에 100g씩 깍둑썰어 소분해둔 소고기는 미역국을 염두에 둔 고기라 할 수 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에 밀려났던 미역국 소환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유리 볼에 물을 담아 마른미역을 불려 준다. 자른 미역이 아니라면 불린 뒤 가위질 몇 번 해주면 된다. 미역을 불리는 동안 냄비에 들기름을 넣고 해동된 소고기와 다진 마늘 반 스푼을 볶아 준다. 소고기 겉면이 익으면 불린 미역을 손으로 꽉 짜서 넣는다. 끓이기 때문에 완전히 불리지 않아도 무관하다. 미역은 볶을 필요 없이 물을 두 컵 넣어주고 가스 불 세기를 키운다. 곧바로 피시 소스 반 국자, 국간장 한 국자(참고로 우리 집 국자는 크기가 작다) 넣어준다. 액젓을 넣어야 하지만, 다이어트하던 때 실곤약 ‘분짜’를 만들기 위해 샀던 피시 소스가 아직도 남아있어 대체하고 있다. 액젓을 넣으면 맛이 한층 더 깊어진다. 국이 끓어오르면 맛본 뒤 소금으로 간을 맞춰주면 된다. 약한 불로 10분간 더 끓여준 뒤, 가스 불 잠그고 자면 된다.
어제의 부지런함 덕에 오늘은 게으를 수 있다. 냄비를 지키고 있는 미역국을 한소끔 끓이고 반찬으로 달걀말이를 준비했다. 지금은 네모난 달걀말이 팬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요령이 생겼다. 달걀말이는 짧고 이른 시간 내에 희비가 교차하며 성공과 실패를 담판 짓는다. 노랗게, 한 겹씩 무사히 말린 달걀말이를 보고 있자면 어린애처럼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진다. 달걀말이는 바로 자르면 모양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도마 위에 식혀두고 밥과 국부터 떴다. 뜨거움이 가신 달걀말이도 알맞게 잘라 접시에 올렸다.
친구는 일단 공깃밥 반을 크게 떠 국물에 말고 시작했다. 뒤질세라 주린 배를 잡고 한 숟갈 크게 떴다. 검증된, 배신하지 않는 맛이다. 면치기 하듯 미역을 호로록 들이켰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먹으니 예행연습을 하는 거 같기도 했다. 막달에 태어난 나는 친구들보다 몇 개월 늦게 미역국과 나이를 먹는다. 그 탓에 생일을 보내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나이가 찬다. 요즘은 숫자 29, 30 사이에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다가도, 다를 바 없는 일상에 곧바로 심드렁해지는 순간을 반복 중이다.
마지막 이십 대를 보내는 이번 생일은 가족과 함께하려 한다. 우리 가족의 생일날 모습은 마치 데자뷔 같다. 당일 아침, 거실에 나가면 생일상 가운데 초를 꼽은 케이크가 있을 거다. 손뼉을 치며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초를 불고 나면 선물 증정식을 한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 앉아 미역국과 잘 차려진 생일상을 먹을 것이다. 덕담을 빙자한 잔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이토록 사소한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안다. 왕복 5시간(버스는 왕복 8시간)을 견디고 데자뷔를 또 한 번 겪으러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른이 되기 전엔 서울로 돌아올 거다.
이것이 나의 스물아홉을 남겨두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