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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진 Jun 16. 2021

다시, 일개미

자아실현은 개나 줘버린 임금 노동자의 시간들에 대하여

그 무렵, 나는 자발적으로 직장을 잃었다. 월급도 잃고, 건강을 조금 잃었다.

   

24살 되던 해였다. 81번째 자기소개서를 끝으로 중견회사 규모쯤 되는 의류회사에 취직했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나는, 동기들보다 앞서 취직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들떴던 것도 같다. 입사가 결정되자마자 바로 얼마 되지 않는 짐들을 정리했고, 구분 없이 마구 짐들을 우겨 넣고 입구를 봉하지도 않은 우체국 박스 여러 개, 끌 때마다 덜커덕 덜커덕 낡은 소리를 내는 진회색 캐리어와 함께 작고 오래된 기숙사를 떠났다.    


회사생활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다. 내가 다니던 곳은 주로 미국 중장년층 여성들의 블라우스를 만들어 수출하는 회사였는데, 대량생산할 제품의 샘플을 미국 바이어들에게 발송해 컨펌을 받으면, 그 샘플을 토대로 인도네시아에 있는 공장의 생산라인에 오더를 넣는 방식이었다. 그 외에도 각 생산라인들의 일정을 관리하고, 의류 제작에 들어가는 원단, 실, 단추 등 부자재 업체들과 컨택하는 일, 옷 한 벌 당 공임비를 책정하는 일을 했다.  

  

야근, 또 야근이었다. 나는 해외영업팀의 막내였는데, 오후 6시만 되면 혹시나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바람으로 열심히 빈 화면에 무의미한 클릭질을 해대며 선배의 눈치를 살폈다. 결국 “저녁 먹고 와서 하자”는 선배의 무미건조한 말 한마디에 속으로 욕지거리를 해대면서 구내식당으로 터벅터벅 향하는 일상의 반복으로 이어질 뿐이었지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성숙한 어른들이 모인 회사는 없었다. 당시의 나는,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주식, 휴대폰 게임, 담배 타임으로 허비하던 선배를, 퇴근 무렵만 되면 갑자기 알 수 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오전 내내 묵힌 일들을 한꺼번에 마구잡이로 쳐내는 선배를, 내가 화장실에 가있는 잠깐의 10분을 참지 못하고 변태처럼 전화를 해대는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기이한 야근의 반복에 당연히 내가 동참해야 마땅하다는 강요는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바로 부산으로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년을 못 채우고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이라 다음 계약자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방을 빼겠다고 부동산에 내 놓은 지 1시간 만에 세입자가 구해졌지만, 세입자는 3주 후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했다. 서울생활이 21일 더 유예되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시간동안 서울의 낮과 밤을 온전히 누려야지. 매일 버스 뒤 자석에서 창문 너머로만 봤던 광화문도 가보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시간에 텅 비어 있는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도 실컷 봐야지.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고, 내일이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 생활에 완전히 지쳐버려, 환기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목록들을 제쳐 두고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알람이 울리지 않은 지는 오래였다. 더운 여름이라 커튼도 치지 않고 창문을 최대한 활짝 열어젖히고 잠들곤 했는데, 덕분에 아침이면 뜨거운 볕이 부드러운 실크자락처럼 내 뺨에 스르르 쏟아져 내려 조심히 눈을 떴다. 살벌하게 귓속을 파고드는 기계음이 아닌, 따뜻한 타의가 나를 조심스럽게 깨우는 일상. 경이로운 아침이었다.    

 

대부분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누워 어제 밤에 읽다만 책을 읽었다. 종이를 성실히 채우고 있는 활자는 나른했고, 활자가 빚어내는 고요는 나를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그러면 이내 점심을 먹기에도 저녁을 먹기에도 애매모호한 시간이 찾아왔다. 언젠가 마트에서 대량으로 사재기 해놓은, 유통기한이 3개월 쯤 남은 3분 카레를 데워 배를 채웠다.     


눕는다. 읽는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뜬다. 운동화를 구겨 신고 집 앞 청계천을 하릴없이 걸어 다닌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이뤄내지 않는 비생산적인 일상. 퇴사 후 서울에서의 마지막 생활은 단조로웠지만 아늑했다.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극히 제한된 동선 안에서 머물렀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 먹었다. 부산역에서 마주친 엄마는 내 얼굴을 보고 말을 잃었다. 피폐해진 정신만을 달래느라 미뤄두었던 내 장기들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주저앉기 시작했다. 경력마저 애매하게 단절되어 직장을 다시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 다시 150통이 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고 30번이 넘는 면접을 봐야 했다. 결국 1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익숙한 고통과 불안 속에서 허덕였지만, 결국 일개미의 삶에 무사히 안착했다.    


그 시간만을 뚝 잘라 셈을 해본다면 얻은 것은 다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잃은 것은 1년 반이라는 물리적인 시간과 몇몇 사람들 정도다. 그 무렵, 많은 것을 잃은 것도 얻은 것도 같다. 여전히 밥벌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그러나, 생각한다.


크고 작은 일상의 흠집들을 기꺼이 메워가며 조금은 단단한 무언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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