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과 어른됨의 상관관계

엄마를 쓰다

by 박유진


보통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나는 부모의 피와 살을 조금씩 떼어먹으며 자라났다. 엄마 아빠는 부지런히 일용할 양식을 구해와 내게 밥을 먹였고, 옷을 사 입혔고, 글자와 글을 가르쳤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어린 나에게 부모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구원자였다.


학교를 마치고 허기가 진 채로 집에 도착하면, 항상 엄마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엶과 동시에 된장찌개나 고등어구이, 카레 같은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손 닦고 와. 손 닦고!" 하는 엄마의 재촉에 대충 손을 물에 몇 번 헹구어 내고는 다시 냉큼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다.


미치도록 지겨운 학교 수업과 잔인한 시험 점수, 절친한 친구의 다정하지 않은 몇 마디 말들, 담임의 진심 없는 훈계와 꾸지람 같은 것들이 잠시 보류된, 행복한 저녁식사의 시작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늘 식욕이 없었고 음식에 대한 관심이랄 게 전혀 없어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참치 통조림, 구운 삼겹살, 햄과 같은 가공육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국밥이나 삼계탕 같이 고깃국물로 된 모든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한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메뉴는 몇 가지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패턴이었다.


고기 대신 참치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 생선과 무, 시래기를 넣고 뭉근하게 조린 생선조림, 당근과 양배추를 듬뿍 채 썰어 넣고 만든 오징어볶음 등등.


가끔 우리(삼 남매)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떼를 쓰면 엄마는 삼겹살을 구워주거나 김치 두루치기를 해주었는데, 이 김치 두루치기라 함은 고기를 먼저 미리 삶아 기름을 쫙 뺀 후 올리브유를 넣고 김치와 볶아낸, 건강함이 아주 돋보이는 음식이었다.(심지어는 맛도 있었다)


엄마의 음식들은 대부분 싱거웠고 심심했다. 자아가 없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약 20년 동안 엄마의 음식들을 부지런히 먹어치우며 쑥쑥 자라났다.


물론 밥만 먹고 자란 것은 아니었다. 엄마와 마주 앉은 식탁에서는, '간이 되지 않은 채소와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 국물은 쓸데없는 살만 찌니 가급적 남겨라, 음식은 천천히 깨끗하게 먹어라' 등등 나의 건강과 성장을 걱정하는 사랑의 말들이 늘 오갔고, 나는 밥과 함께 이 말들을 꼭꼭 씹어 삼키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다 엄마의 식탁을 완전히 떠나게 된 것은 결혼을 하게 되면서였다. 남편과 함께 살 집을 구했고, 새로운 우리가 된 남편과 내가 함께 사용할 식탁을 구입했다. 조금 덜 익은 생선과 설익은 밥, 퉁퉁 불은 파스타 같은 것들이 식탁에 올려졌다. 난생처음 꾸려진 나의 식탁은 조금은 서툴고 미숙한 음식들을 품었다.


그러다 한 번씩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본가에 갔다. 엄마는 늘 같은 식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반겼다. 쭉 그랬다. 대학생이던 내가 처음 부산 집을 떠나 서울로 가버렸을 때도, 직장생활을 한다며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때도, 결혼과 동시에 또 다른 식탁을 갖게 된 내가 엄마의 식탁을 영영 떠나버렸을 때도. 항상 따뜻하고 다정한 음식들을 가득 품은 채 나를 맞이하는 엄마와 엄마의 식탁이 있었다.


자신 앞에 놓인 밥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어떤 시점에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나 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보다 잘났거나 똑똑하며 돈이 많거나 현명했고, 그들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나를 위치시키고 밥벌이를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이제는 안다.


냉혹하기 그지없는 현실에서 새끼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고 힘에 부치면 배로 밀어서라도 때로는 기어서라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셀 수 없는 위로와 다정함과 사랑을 일러준 엄마의 식탁 덕분에 이제 나는 온전히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근사한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어엿한 나의 식탁에서 삶에 지친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현명함을, 나는 엄마의 식탁으로부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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