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한 수많은 나의 글들이 떠오른다.
나는 왜 매번 오랜만에 글을 집어드는 걸까.
오늘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어쩌면 나보다 나를 잘 알지도 모를 친구를 만났다.
스스로도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있던 내 기분을 들여다 보고 나를 나의 세상에서 꺼내어 주는 그 애는 오늘도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들여다 봤다.
나는 분명 생각을 멈출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것들에도 너무 지쳐버려서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는 새에 겨울이 왔고, 내가 원치 않았지만 겨울은 왔다. 난 항상 한 해를, 여름을 기다리며 살지만, 여름은 계속 내 곁에 머물지 않는다.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니까. 내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갈 수밖에 없는 거니까.
어쩌면 세상일이라는 게 계절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바라고, 원하고, 기대하는 많은 일들이 사실 그렇게 흘러가지 않게 아니 뭔가 정해진 대로 흘러갈 뿐이라고. 그 속에서 나는 그걸 알지 못한 채 희망을 품고,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세상이 그런 거라면 나는 거리에 심어진 나무처럼 그저 다가오는 계절을 비를, 눈을 맞으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서도 나는 나무와 다르게 다리를 가졌으니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으니까 멈춰서 있을만도 없을 노릇이다.
요즘은 그런 나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내가 아닌 듯 나를 멀리서 지켜본다. 그러다 보니 매일 틀에 박힌 삶을 사는 내가 재미없어 보였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롯이 혼자가 된 듯 하루를 보내는 내가 안쓰러웠다. 작은 행복을 발견할 줄 모르는 내가 불쌍했다.
나를 향한 연민은 나를 작아지게 했고, 외롭게 했다. 사실 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안쓰러워할 만큼 약한 사람도 아니다. 늘 도전했고, 무언가를 바랐고, 사랑을 했다. 지금은 그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겨울이 와서 그 겨울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추우니까 나의 살을 가리고, 움츠러들어 있을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여름에 활짝 웃을 나를 상상하면서, 뜨거운 여름의 햇빛을 눈감고 느껴보면서. 또 겨울이 올 걸 알면서도 여름이 있기에 나는 버틸 수 있다.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겠지만, 분명 여름은 온다. 겨울이 또 차가운 바람을 데리고 오겠지만 또다시 여름이 올 거다.
나는 여름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나는 기다릴 계절이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겨울에 갇혀 얼어버린 게 아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아직 이 세상엔 많이 있다는 걸. 오늘도 나는 여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