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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정 Jul 11. 2024

불편한 마음엔 이유가 있다

 나는 근래 안 좋은 기분을 좀처럼 달랠 수가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어딘가 찝찝한 기분. 왜인지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안 좋은 느낌. 답답함 그리고 불안함. 이런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걷힐 줄을 몰랐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를 감정 때문에 누군가에게 쉬이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내 고향에 다녀오면서 그 불쾌함이 찾아온 경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아니 두 달 만에 부산에 내려갔다. 엄마를 보고 싶어서였다. 엄마야 매일매일 보고 싶지만 최근에 그런 생각이 더욱 심해져 갔다. 그건 내가 기분이 안 좋다는 증거다. 마음이 편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발악 같은 거랄까.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다녀왔다. 아침 7시 반 기차에 나는 가는 설렘을 느낄 새도 없이 꾸벅꾸벅 졸기 바빴지만 기차에 내리자마자 나는 바다 냄새에 부산에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데리러 온 엄마를 찾아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그 길에 노숙자 한 분을 만났는데 이유도 모르게 그분은 내게 쌍욕을 하셨다. 나는 앞만 보고 가는 스타일이라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생각에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에 엎드려 계신 그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을 바라봤다는 이유로 한 번 더 욕을 들어먹었다. 기분 좋은 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나는 나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엄마가 있었기에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갔다. 평소의 기분이었다면 분명 나도 똑같이 쌍욕을 던졌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욕마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엄마한테 가서 칭얼거릴 건덕지가 생겨 좋기도 했다. 엄마는 같이 욕을 해줄 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황당한 일을 즐겁게 넘겨버리고 나는 익숙한 나의 동네로 갔다. 부산에 있는 동안에는 몇 달간 느껴온 짜증스러운 감정이 단 한 번도 느껴지지 않았다. 편안했고, 편히 잠들었고, 행복하게 눈을 떴다. 다음날이 오지 않길 바라며 잠드는 날도, 일어나고 싶지 않은 아침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숨을 쉬는 게 기뻤다. 이렇게 엄마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동네에, 아무런 걱정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벅찼다. 한 발짝 아니 몇 km나 먼 곳으로 도망 오고 나서야 나는 내 감정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다.


 그건 '싫음'으로 가득 찬 내 하루 때문이었다. 가기 싫은 곳으로 출근을 가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 어디에 끌려가듯 눈을 뜨고, 집으로 가는 길마저 지쳐 쓰러지고 싶었던 날들이 그려지면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해야 하기에, 살아야 하기에 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 일들은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다. 내가 선택한 그 삶이 나는 무지하게도 괴로웠다. 다만 내가 선택했기에 쉽게 물릴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었던 거다. 나도 실수를 한다. 하고 싶은 걸로 착각을 할 때도 있고, 하기 싫은 걸로 착각을 할 때도 있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쁜 사람으로 바꾸기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좋은 사람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냥 이번에도 그런 거였다. 그런데 나는 인정하기가 싫었다. 내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내가 괜찮아 보일 거라고 믿은 사람이 마주하기도 싫어질 사람이었다는 걸.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엄마집이 아닌 나의 집으로 돌아가서, 하기 싫은 일을 관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며, 또 도전하며 사랑하는 이와 보내는 생활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와 이별하는 순간이 미치게 아쉬웠지만 나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했다. 나는 상반기 나의 삶을 청산하고 내가 원하는 일들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다시 삶을 가꾸어 나갈 거다. 이유를 알았으니 고치면 된다. 지금 내가 할 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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