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가 웃는다. 그 애 특유의 한 쪽 입꼬리만 올린 웃음이 아닌, 양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균형을 맞춘 꽤 보기 좋은 미소다. 그녀를 웃게 하려고 수없이 말을 골라야 했던 내 노력이 보잘것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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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알람 없이 눈을 떠 시간을 확인했다. 6시 7분이라는 이른 시간 아래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던 호수였다. 카톡도 아닌 문자라는 게 그 애다웠다. 내가 봐야 했던 첫 단어는 ‘부고’였다.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호수의 가족이라곤 언니뿐인데 부고라니. 빠르게 문자를 내렸다. 사라진 건 언니가 아니었다. 호수였다.
놀라지는 않았다. 그 애를 만날 때마다, 그 애를 떠올릴 때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까. 차분히 몸을 일으켜 샤워를 했다. 평소처럼 아무 음악이나 틀고, 사람들 사이에 부대껴 회사에 갔다. 계획해 둔 일을 하나둘 끝냈고, 내일 할 일까지 적고 나서야 퇴근했다.
장례식장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제야 왔냐며 마중 나온 호수를 떠올렸다. 그러나 내 앞에 나타난 건 호수의 언니였다. 눈매가 닮아 있었다. 호수의 친구라고 나를 소개하니, 언니는 누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을 벗고, 그 애의 사진 앞에 섰다. 신도 부처도 무엇도 믿지 않았던 호수에게는 묵념을 해야 할지, 절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두 번 절을 하고 한 번 묵념을 했다.
언니는 밥을 먹고 가라며 아무도 없는 자리에 나를 앉혔다. 호수와 달리 짙게 그을린 피부가 어쩐지 창백해 보였다. 내 맞은편에 앉은 언니는 호수가 차에 치여 죽었다고 했다. 호수가 모는 차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가 그런 건 치였다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분명 그 애가 스스로 세상을 버렸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호수는 술에 절은 인간 하나 때문에 죽었다. 스스로가 아니면 허락되지 않을 것 같던 그 애의 숨이 그렇게 간단히 멎었다. 말을 마친 언니는 몸을 잘게 떨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어른의 손이라기엔 작은 그 손은 어떤 위협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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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세상을 미워했다. 정확히 말하면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그래서 늘 물었다. 그 애는 나를 만날 때마다 물음표를 던졌고, 나는 그걸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호수의 안주인 마침표를 내밀었다. 호수는 세상 사람들을 다 증오했다. 예외는 언니와 나뿐이었다. 나도 딱 한 번, 호수에게 물음표를 던진 적이 있다.
“너는 그렇게 사람을 싫어하면서 나는 왜 좋아하냐. 아니다, 내 착각인가?”
호수는 나를 뚫어져라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언니나 너 아니면 술 안 마셔. 안주가 없잖아. 아무한테나 질문도 안 해.”
그렇게 답한 호수는 왜 사람들이 그토록 이기적인지, 왜 그렇게 쉽게 남을 무시하는지,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평생을 고민한다 했다. 그런데도 답을 찾을 수 없어 괴롭다고 했다. 나와 이야기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나는 그 애와 달리 세상에 적당히 숨어 산다.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호수에게는 사는 방식이 없었다. 자기를 설득하지 못하는 세상과 어울려줄 생각 따위 없었다. 우린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에 살아야 했는데 그 애는 세상에서 사는 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호수가 죽어있다고 생각했다. 호수가 제 손에 죽지 않을 거였다면 차라리 내가 호수를 죽게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내게 세상을 물을 사람은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도 당신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며 매일을 보내다 숨이 막힐 즈음이면 호수를 찾았다. 호수 앞에 앉아 크게 숨을 쉬고 나면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이제 세상이 아닌 호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