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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6. 2017

비극의 기억 : 왓트마이 사원

캄보디아 사원 둘러보기. 열번째



1. 1975크메르루즈 정권은 200만여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다
학살의 중심에 선 사람은 폴 포트급진 공산 무장 단체였던 폴 포트 세력은 사회주의 개혁을 명목으로 학살을 시작했다그 대상이 된 것은 이전 론 놀 정부의 관계자 및 크메르루즈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그리고 정권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될 위험이 있는 지식인층이 주를 이루었다.
킬링필드로 알려진 비극적인 사건의 시작이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고백에는 이런 것이 있다.
[그때 나는 열 살이었다. 학교에서 비닐봉지를 줬다부모가 폴 포트나 크메르 루즈 정권에 대해 안 좋게 말하면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우라고 했다.]
그 고백을 한 사람은 이젠 고작마흔이 넘었을 터이다





2. 캄보디아의 근현대사는 혼란으로 물들어 있다.
이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캄보디아의 왕족인 시아누크
미국의 지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던 론놀 장군
그리고 크메르루즈의 당주였던 폴 포트
이 셋 중 과연 누가 옳고 그른가찬찬히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가다 보면 누구의 손도 들어주고 싶지 않아진다
무능력과 부패로 물들었던 론놀 정권
왕족이란 이유만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시아누크
대학살을 일으킨 폴포트
어느 나라든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능력하고 욕심 많은 지도자들이다
거기에 플러스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외부의 세력미국과 베트남태국의 원조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3.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은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
베트남과 태국캄보디아의 관계는 실로 오묘하다.
베트남은 프랑스령에 있을 당시프랑스의 대리로 캄보디아를 지배한 적이 있다그 후로는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캄보디아까지 전쟁터가 되는 등이 두 나라의 관계는 아무래도 편하지만은 않다태국도 마찬가지국경을 사이에 둔 태국과 캄보디아의 싸움은 그 역사가 길다프레하비어 지역의 태국 군의 주둔과 그에 따른 논쟁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나고야 끝나기도 했다그리고 지금은 압살라가 누구 것인지로도 계속 싸우고 있다고.





버스 운전을 해 주는 란 아저씨는 마흔 중반의 남자였다이야기를 하다 어느 나라가 더 싫은지 묻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두 나라 다 싫지만두 나라에서 전기며 물자를 수입해 오는 것도 사실이라 무작정 싫다고 할 수만도 없는 그런 심정이란다.


 



4. 이번 여행을 안내해 준  분은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퇴직 후에 캄보디아에 놀러 왔다가 애들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와서 살게 되었단다일행 중에 교육 봉사를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저씨와의 인연 때문이었던 것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길을 걷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길로 접어드는 사람.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그 길을 생활 속에서 걷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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