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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11. 2017

삶의 한 풍경: 싸르 시장

캄보디아 여행 수다떨기. 첫번째



1. 전통시장을 살립시다.
언젠가부터 흡사 구호처럼 들려오는 말이다.
이 말이 슬픈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러한 구호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통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버린 수많은 시장들의 개성이 슬프다.
전통 시장이라 해도 그 모습은 제각각일 터인데 말이다.





2. 어디를 가든 그곳의 시장을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 시장뿐만이 아니라 쇼핑몰 등도 마찬가지다.
그곳만큼 그 나라의 모든 사정이 보이는 곳도 드물지 싶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싸르 시장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씨엠립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사원을 보러 오니깐.
굳이 싸르까지 나와서 장을 볼 필요는 없지 싶다.
메인 스트리트에만 가도 슈퍼가 있고, 숙소 근처에서도 얼마든지 물건을 살 수 있으니깐.




싸르 시장에 들어서면 인상적인 것은 염장되어 매달려 있는 육류들이다.
캄보디아는 공업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자원은 풍부하지만 가공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손으로 짠 수공예 바구니보다 플라스틱 바구니가 더 비싸다.
내추럴,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는 나라들과는 상반된 광경이다.
기술과 자연. 어느 한쪽으로 추가 기울어지면 올라간 쪽을 동경하게 되는 법인가 싶다.





3. 싸르 시장은 상설시장이다. 즉 고정된 자리에, 자신의 자리를 가지고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싸르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한 삶의 터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니, 관광지 화 된 시장처럼 들쭉날쭉, 격차가 크지도 않을 테고.
말 그대로 한몫을 챙기지는 못한데도, 꾸준한 일상을 영유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일터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가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타블레 피시로 페이스북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봤다.
순간 우리나라 전통시장에 온 줄 알았다. 우리나라는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라인이 대세지만.





그리고 순간, 이곳 시장에도 권리금이 있을까 한 생각을 해 버렸다.
사람이 현실에 찌들면 여행 중에도 그곳의 현실에도 지나치게 다가가게 된다. 안 좋은 버릇이다.
내가 그런 것을 궁금해해 봤자,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는데 말이다.





4. 싸르 시장 안에는 냉장, 냉동 시설이 없다.
아직 전기 개발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근처 태국과 베트남에서 전기를 수입해 온다고 한다. 전기가 비쌀 만도 하다.
이곳만이 아니다. 24시간 편의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에도 냉장고는 없다.
혹시 메인 스트리트에 나간다면 한 번쯤 편의점에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시엠립의 편의점은 다른 나라와 그 풍경이 무척 다르다.
이른바 레토르트 식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안에서 과일과 야채, 전통 과자를 판다.
라면과 음료수, 과자도 팔지만 대부분 다른 나라의 제품이다.
캄보디아산인 것들은 찻잎과 설탕, 향제품 정도일까.





5. 싸르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게들은 네일숍이다.
입구에서부터 네일케어 숍들이 네다섯 개, 줄지어 늘어서 있다.
손톱과 발톱을 예쁘게 다듬고 칠하는 것. 그 작은 반짝거림이 힘이 되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혹은 쉬는 날에 시장에 앉아 손톱 손질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다른 사람이 손톱을 다듬어 주는 시간. 그것은 단순히 예쁜 결과물만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몸을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좋은 것이다.
소소하게 예쁜 것들. 그것을 위해 쓰는 시간. 그것의 의미.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그다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6. 종종 불편한 말을 들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래서, 못 사는 나라잖아.
이런 말들.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듣게 되는 말들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아이들의 머리며 뺨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그들에게 사탕 하나만 쥐여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나라의 경제 발전도를 객관적으로 보고, 어느 정도구나 생각하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
혹은 아예 나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여기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이다.
볼 게 없다니깐, 하는 말만큼이나 싫은 말들.
볼게 없는 곳은 없다.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7.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의 사진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니깐.
그렇게 말하면서, 시엠립의 아이들 사진은 마구 찍어대는 사람을 봤다.
그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하니 혀를 찼다. 애들 돈 주면 버릇 나빠져. 이래서 이 나라는.
그 사람은 모르겠지. 당신이야말로 저래서 꼰대들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걸.
아이들이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향해 웃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아이들 바로 앞에까지 다가가 마구 사진을 찍는 모습은 그저 추하다.
그 사진이 얼마나 멋있게 나오더라도, 그 사진에 담긴 것이 과연 멋있을지.
저렇게만은 되지 말아야지.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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