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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15. 2017

진해, 그 벚꽃비가 좋았던 건.



왜 일기예보는 이럴 때에만 맞는 걸까.



큰 마음을 먹고 떠난 꽃구경이었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다섯 시간, 네 번의 휴게소를 거쳤다. 한 번은 가봐도 두 번은 못 가겠다, 반쯤 진담 섞인 농담이 차 안에서 오고 갔다. 
가족 모두가 꽃구경을 간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 최고의 벚꽃을 보고 싶었다. 진해라면 그 모습을 보여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진들이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웬걸.
떠나는 전날, 일기예보는 비였다. 강수확률이 70%를 넘었다. 내 회사 오프일에 맞추느라 출발일을 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미룬 터였다. 그러니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 비가 올까. 일기예보는 어긋나라고 있는 거잖아. 애써 그렇게 마음을 달랬다. 



그놈의 일기예보. 왜 틀려라 할 때만 귀신처럼.
진해로 내려가는 동안, 진해에 사는 지인이 계속해서 실시간 기상 중계를 보내줬다. 바람 불고 비 와요. 그쯤 되면 부정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휴게소에서 비옷을 샀다. 



진해에 도착하니 과연,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빗줄기가 세지는 않았다. 더 다행이었던 건, 궂은 날씨쯤 감내할만하다 싶게 진해가 아름다웠다는 거였다. 진해의 마을 도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진해에 도착하자마자 일박 이일의 짧은 일정이 아쉬워졌다. 이곳은 천천히 걸으면서 보면 참 사랑스러울 곳이구나, 싶었다.



숙소에 짐을 놓고 여좌천에 가기로 했다. 아버지와 나의 손에는 카메라가, 엄마와 언니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었다. 찍는 사람과 찍지 않는 사람. 우리 집은 오대 오로 그 비율이 참 공평하게 나뉘어 있다.
같이 찍는 쪽에 속하긴 해도, 나와 아버지가 카메라를 다루는 태도는 약간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진 초보자인 나는 카메라를 아끼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든 마구, 많이 찍어보자는 쪽이다. 비가 와도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꺼낸다. 오 년을 기한으로 잡고 카메라를 쓰고 있다. 반면에 아버지는 이미 몇 대의 카메라를 거쳐 오신 분이다. 얼마 전에 드림카를 장만하셨다. 나보다 소중히 다루는 게 당연한 일이다.



숙소에서 여좌천까지는 걸어서 이십여분이라고 했다.
"택시 탈까요. 나 좀 힘든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이셨다.



예전에 아버지는 택시를 잘 타지 않았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는 분이었다. 무릎이 나빠지기 전까지, 아니다. 무릎이 나빠지고 난 후에도 한참을 참고 견디셨다. 그 고집의 끄트머리에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어렴풋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다. 나는 아버지와 있을 때 한정으로 엄살쟁이가 되기로 했다.



택시를 탔다. 여좌천에 내리니 빗줄기가 잦아든 듯도 했다. 우산 없이 모자만 뒤집어쓰고 다녀도 될 정도였다. 연분홍 벚꽃 구름에 쌓인 목조 다리는 예뻤다. 저 구름의 끝에 올라타고 싶어 졌다. 다리의 위로, 또 위를 향해 걸었다. 어느새 주변이 어둑해졌다.



다리 아래 조명이 켜졌다. 어느새 불어난 여좌천의 물줄기 위로 노랗고 빨간 불빛들이 흘러 다녔다. 
그 순간, 빗줄기가 갑자기 강해졌다.



재빨리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어머니와 언니가 우산을 폈다. 한 걸음 앞서 걷고 있던 아버지도 어머니의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비옷을 입고 견딜 수 있는 빗줄기가 아니었다. 몸에 빗줄기가 닿으면 아프기까지 한, 그런 비가 쏟아졌다.
두 개의 우산 아래 넷이 나란히 서, 바람을 견뎠다. 비바람이 벚꽃을 안았다. 거센 빗줄기 사이에서 벚꽃잎들은 화려한 빗방울이 되어갔다. 

벚꽃 비가 내렸다.



한참을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문득 옆을 봤다.  나와 닮은 듯, 닮지 않은 얼굴들. 

그 순간 우리는 함께, 같은 광경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그 벚꽃 비가, 진해의 어느 것보다도 좋았던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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