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Jun 25. 2021

좋은 사람과 호구 사이에서

에데시 언너 Anna Edes : 복숭아 케이크


크리스마스이브 날, 회사에서 케이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저녁 열한 시에 퇴근을 했다. 팀장은 나보다 먼저 퇴근하면서 내게 케이크를 주고 갔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니깐,라고 말하면서. 나는 그 케이크를 회사에서 모두 먹어치웠다. 그걸 집까지 들고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먹은 케이크는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당시 그 케이크는 내게 내려진 또 하나의 업무였을 뿐이다. 버릴 수는 없지만 집에 가져가고 싶지는 않은 존재. 그렇다면 버리면 되었을 텐데. 버리자니 남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마음에 꾸역꾸역 먹고 있었던 것이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때. 나는 ‘아니요’라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깐. 누구도 내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회사에서 내게 초과근무를 요구하는 것이, 너는 아직 뭘 모르니깐 시키는 대로 해, 모두 다 너를 위한 거야, 하는 말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말이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에데시 언너.

스무 살 초반. 여성.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일찌감치 가정부 일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본 언너는 ‘수더분하며 몸집이 작고 살짝 겁이 많은, 평범한 여자아이’ 다. 

그 여자아이가 사람을 죽였다. 

자신의 고용주인 비지 씨 부부를 칼로 난도질해서.

비지 씨 부부를 죽이기 전, 언너가 한 일.

먹었다. 아주 많이. 걸신들린 사람처럼.

특히 케이크를 많이, 아주 많이.


그의 고용주인 비지 부인은 언너를 ‘착하고 성실한 가정부’라고 자랑했다. 여기서 비지 부인의 ‘착하고 성실한’의 기준을 살펴보면 이렇다. 밥을 많이 먹어서는 안 되고, 애인을 사귀어서는 안 되며, 극장에 가서도 안 된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면 그만큼 집안일에 소홀해지니깐.

비지 부인의 집에서 입주 가정부로 지내면 받는 대우는 이랬다. 자는 곳은 부엌의 간이 의자, 식사는 빵과 치즈 한 조각씩,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일하고, 빗자루처럼 늘 쓸고 닦아야 한다. 아파서는 안 되고, 물건을 깨뜨리면 월급에서 물어내야 하며, 결혼을 해서도 안 된다. 

비지 부인은 언너가 굴뚝 청소부와 결혼해 일을 그만두려 하자, 꾀병을 부리며 그녀가 집을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 언너만큼 훌륭한 가정부를 다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비지 부인은 언너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녀를 계속 채용하기 위해 급료를 인상하거나, 노동 환경을 개선해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언너를 설득할 뿐이다. 너는 어려서 세상을 모르고, 그 남자에게 속는 것이며, 우리는 한 가족과도 같은데 이렇게 정 없이 굴 거니, 하고.

비지 부인이 언너를 설득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채용 공고가 떠오른다.

‘가족처럼 일할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공고문.

언너는 케이크를 좋아한다. 그러나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언너가 가끔 케이크를 먹는 건, 다른 집의 가정부인 에텔이 줄 때뿐이다. 같은 가정부이지만, 에텔은 언너와는 다른 삶을 산다. 에텔은 주인과 말다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대가로 에텔은 안락한 주거 환경과 충분한 휴식 시간과 음식을 보장받는다. 

언너는 에텔이 건네주는 케이크는 얼마든지 먹지만, 비지 부인이 딱 한 번 건네준 복숭아 케이크는 먹지 않는다. 비지 부인은 언너가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검소한 입맛’이라 칭찬한다. 거실에 모여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 언너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린 것은 의사인 모비스테르 밖에 없다.

그는 말한다.

언너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기에, 좋은 것을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고. 

언너가 원했던 것은 케이크 그 자체였을까.

그렇지 않으면 비지 씨의 집에서 탈출하는 것이었을까.

충동적으로 비지 씨 부부를 죽이기 전에서야 케이크를 마음껏 먹는 언너.

억지로 케이크를 먹어 치우던 크리스마스이브 날의 나와, 살인을 통해서만 탈출할 수 있었던 언너. 케이크를 먹었던 먹지 않았던 그것은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그 케이크는 달콤하지 않았을 테니깐.


내가 부다페스트에 간 것은, 회사에 혼자 앉아 케이크를 먹었던 때부터 삼 년이 더 지난 뒤였다. 나는 저 이상한 회사에서 2년을 넘게 버텼고, 건강에 문제가 생긴 후에야 그만두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묵었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 그와 수다를 떨다가, 나는 언너가 먹었던 ‘복숭아 케이크’가 흔히 볼 수 있는 과일 타르트와는 다른 형태일 수 있음을 알았다. 타르트지에 생크림을 바르고 복숭아 과일을 얹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숭아 케이크일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집에서 만들어 먹는 복숭아 케이크는, 크레이프처럼 얇게 반죽을 부쳐 쌓은 후 크림을 뿌리고, 그 위에 복숭아를 얹는 형식이 더 많았다고 한다. 혹은 통조림 케이크(케이크 시트만을 포장해 파는 것)에 생크림을 얹기도 했단다. 『에데시 언너』가 쓰인 것은 1926년으로, 소설 속 무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이다. 그런 상황이니, 버터와 설탕을 듬뿍 써 만들어야 하는 본격적인 케이크보다는 크레이프를 쌓은 형태의 케이크가 더 선호되지 않았을까. 

사소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요.’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그만두는 게 도망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만 누군가에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처음 와 보는 도시가 낯설 듯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누군가에게 듣지 않으면 평생 모를 수도 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다페스트에서 케이크를 먹으면서, 말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에데시 언너를 닮은 누군가에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케이크는, 달콤함을 느끼며 먹어야 행복한 법이다. (*)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숙소에서 파도 소리 들으면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책 한 권 읽으며 지내는 게 최고 아닌가 싶어요. 다가오는 여름, 여행 중 함께하면 좋은 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특히 음식 테마의 여행에 어울리는 책!

표지만큼이나 상큼한 이야기, 서툴러도 맛있게 만들어가는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함께해 주시면 정말 기쁠 거예요!! 아래 링크를 통해 각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422089

매거진의 이전글 상냥함이 필요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