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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9. 2021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은하철도의 밤: 초코 비스킷


일본 도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던 날이었다. 잔돈을 처리하기 위해 면세점 과자 코너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문득 눈에 들어온, 파란색 포장지로 싸인 과자. 도쿄 캄파넬라(東京カンパネラ). 이름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 안에는 새와 열차 모양 비스킷이 들어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캄파넬라’라는 명칭에, 나와 같은 작품을 떠올린 사람은 누구든 같은 상상을 했을 것이다.

캄파넬라. 조반니의 친구.

은하수를 가로질러 달리던 작은 열차.

두 사람이 나누어 먹던, 초콜릿 과자 맛이 나는 기러기.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면세점에서 사 온 도쿄 캄파넬라는 동물 모양 과자가 아니었다. 안에 든 것은 단순한 검고 짙은 초코 샌드일 뿐. 그 순간 밀려오던 실망감이라니.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에 의하면 도쿄 캄파넬라의 ‘캄파넬라’는 이탈리어로 ‘종’이라고 한다. 「은하철도의 밤」과 무관한, 작곡가 리스트의 작품 <라 캄파넬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과자였다. 이렇게 된 거, 음악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라. <라 캄파넬라>는 떠나는 방랑자를 위한 것 같은, 그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그때부터 「은하철도의 밤」을 읽을 때에는 음악이 함께하게 되었다.

「은하철도의 밤」이 읽고 싶어지는 날. 친구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그냥 친구가 아닌, 한없이 착하고 다정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 아련해지는 친구. 험한 세상에서 손해만 보고 살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캄파넬라를 닮은 친구.

나는 친구를 통해 미야카와 겐지를 알게 되었다. 친구는 미야자와 겐지를 정말 좋아했다. 겐지의 고향인 하나마키에, 오직 미야자와 겐지의 기념관을 보기 위해 다녀왔을 정도였다. 친구와 겐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하나마키보다는 다른 곳에 가고 싶어졌다. 어디라 딱 칭할 수는 없지만, 별이 아주 많은 곳.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는 곳. 몽골의 사막처럼 넓고, 텅 비어있고, 곳곳에 사람이 있고, 별이 가득한 하늘에 열차의 기적을 닮은 바람소리가 천천히 울리며 지나가는 그런 곳. 친구에게도, 캄파넬라에게도, 미야자와 겐지에게도 그런 곳이 어울리지 싶었다. 

선한 사람들은 어쩐지, 별을 닮았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라 일컬어지는 미야자와 겐지. 그의 유작인 「비에도 지지 않고」를 읽다 보면, 미야자와 겐지는 캄파넬라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 욕심은 없고
절대로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네…….(중략)
... 모두가 날 얼간이라 부르고
칭찬받지 못해도
근심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네.

미야자와 겐지는 동화 작가로 유명하지만, 농촌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도쿄로 상경해 일용직으로 일하며 동화를 썼다. 그러다 여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귀향, 그때부터 농업학교 교사로 일하며 농촌 계몽운동에 힘썼다. 

그러나 제국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세계주의적 평화를 지향하는 미야자와 겐지의 사상은 외면받았다. 심지어 그가 헌신했던 고향의 농민들조차 그를 이상주의라 비웃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미야자와 겐지는 더욱 동화 창작에 열중했다. 그는 동화를 통해 아픔을 치료할 수 있다 믿었다. 

「은하철도의 밤」은 미야자와 겐지가 ‘영혼의 동반자’ 라 부르며 최고의 친구로 여겼던 여동생, 도시가 사망하고 다음 해 쓰였다. 미야자와 겐지와 여동생 도시는 어릴 적부터 닮은 면이 많아 서로를 잘 이해했다. 둘 다 자연을 좋아했고, 몸이 약해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생활했다. 「은하철도의 밤」에 삶과 죽음, 이별의 고통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는 것은 도시와의 이별이 영향을 끼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도, 삶과 죽음은 편도행 티켓과 자유행 티켓, 그 차이일 뿐이라는 성찰, 자신의 선택에 눈물 흘릴 어머니를 걱정하면서도 남을 위한 희생은 가치 있음을 믿는 캄파넬라의 대사는 고스란히 미야자와 겐지를 드러내고 있다.  

우유와 초코 비스킷, 그리고 「은하철도의 밤」을 앞에 두고 라 캄파넬라를 듣는다. 어디서 인가 종소리가 울리고, 그 종소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겨야 할 듯 만드는 곡. 조반니와 캄파넬라가 철도에 타고난 후부터 음악을 들으며 읽다 보면, 자꾸만 책장을 더 느리게 넘기게 되었다. 흥미진진한 두 사람의 여행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은하철도의 밤을 읽으며, 친구와 함께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러다 더듬더듬,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새벽을 건너는 긴 통화. 은하수를 건널 수는 없어도, 추억의 강은 건널 수 있다. 

그 또한 훌륭한, 여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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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귤한 표지의 단편집!! 

찬바람 불 때 따뜻한 이불 안에서 귤 까먹으며 읽어도 딱 어울리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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