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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7. 2021

괴짜들이 세상을 바꾼다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 : 마지팬 케이크




고등학교 생활 기록부에 이런 항목이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 

대체 여기에 뭘 적어야 하냐고 아는 동생이 물어왔을 때, 마땅히 해 줄 대답이 없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이 대체 무엇인지 한 번에 알기에는, 나도 그다지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탓이다.

대체 언제부터 창의성이 하나의 스펙처럼 다루어지게 된 걸까. 21세기에는 창의적인 인재가 선호된다는 말부터, 업무 하나를 해도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까지.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은 생각에서 출발한다는 창의성이, 오히려 사람들을 얽매고 있는 상황은 희극을 넘어선 비극으로 보인다.

나 역시 그런 비극에서 자유롭지 않다. 때때로 ‘좀 더 창의적으로’라는 말은, 딱 집어 잘못된 곳은 없으나 무언가 최종 결정권자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때, 작업물을 되돌려 보내기 위한 문장으로도 사용되는 듯하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작업물을 좀 더 창의적으로 보이게 하는지는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을 알아내는 스트레스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럴 때면 괴짜들이 부러워진다. 괴짜들이라고 모두 창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은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압박감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아 보이기에.

괴짜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미술가이자 과학자, 건축가, 발명가, 사상가. 이 수많은 수식어에 어울리는 이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천재이자 괴짜였다. 신비한 매력을 지닌 초상화 ‘모나리자’를 그렸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기 400년 전에 비행기의 조형물을 그려낸 인물. 워낙 많은 업적을 남겼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혁신적인 요리사이기도 했다. 그는 피렌체에 살던 당시, 보티첼리와 함께 ‘세 마리 개구리 식당’을 운영했다. 

당시 레오나르도가 고안해 낸 술안주는 이랬다. 

• 안초비와 당근, 잎채소와 아스파라거스 줄기

걸쭉한 고기 요리가 사랑받던 당시, 레오나르도의 이러한 심플한 요리는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식당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 뒤에도 레오나르도의 요리는 계속되었다. 그는 빵으로 성문을 깨는 파성추와 공격용 사다리 모형을 만들어, 메디치가의 로렌초에게 보냈다. 문제는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알아챌 인재가 로렌초 주변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난다.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는 루도비코의 연회 담당자로 임명되었다. 이때 레오나르도는 그의 궁전을 효과적으로 개조하기 위해 온갖 발명품을 만들었다. 후추 가는 도구, 설거지 기구, 연기를 빼내는 장치, 자동 혼합기 등등. 그가 고안해낸 장치들은 그 당시에는 어디에도 없는 것들이었다. 실제 자동 혼합기의 경우, 레오나르도가 세상을 떠나고도 30년 후에야 비슷한 형태의 것이 상용화되어 사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연회 당일, 기계들은 제멋대로 움직였고 연회는 거의 실패할 뻔했다.



레오나르도가 이토록 요리에 열중했던 이유. 레오나르도는 당시의 요리를 개선하고, 주방 도구들을 혁신하는 것이 생활의 질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다. 그에게 요리는 또 다른 실험이었던 것이다. 그는 고기 위주의 식단이 병을 일으킨다고 여겨, 제자 살라이를 상대로 ‘풀 다이어트’ 실험을 벌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의 요리 실험은 역시나, 대부분 환영받지 못했다.

이러한 레오나 로드의 요리에 대한 소책자 <코덱스 로마노프>를 재구성한 책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을 읽다 보면 가장 먹고 싶어지는 음식.

마지팬 케이크다.

책에는 ‘편도 빵’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산타 코로나 자매가 만들었으며 으깬 아몬드, 꿀, 계란, 흰자를 섞어 만들었다는 점에서 마지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팬을 편도 빵, 편도 쿠키 등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아몬드의 한자식 표기인 편도(扁桃)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마지팬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스 B. C4세기경, 가루로 된 아몬드를 꿀과 혼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마지 팬의 원조라는 이야기부터, 옛 톨레도(현 스페인 남부 지방) 지방의 아랍인들이 아몬드와 설탕을 섞은 반죽을 마타반(Mawthaban)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확실한 것은 마지팬이 십자군 전쟁에 의해 중동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마지팬은 베니스의 무역항을 경유해, 유럽의 많은 나라들로 번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마지팬을 즐겨 만들었다는 것도 있음직한 이야기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마지팬으로 루도비코와 베아트리체의 결혼식을 기발하게 꾸미려 한다. 거대한 천막을 만들고, 그 천막을 모두 케이크로 꾸미려 한 것이다. 케이크로 만든 식탁과 의자에 앉아, 케이크를 먹는 기발한 연회를 열려고 한 것이다. 

케이크와 옥수수 죽, 호두, 건포도, 온갖 색의 마지팬으로 꾸며진 연회장.

상상만으로 달콤한 냄새가 날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구덕한 마지 팬은 이 계획에 꽤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케이크만으로는 사람이 앉을 정도의 강도를 가진 케이크를 만들 수 없었을 테니깐. 



피렌체로 여행을 갔을 때 ‘세 마리 개구리 식당’이 어디 있을까 찾아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아르노 강 근처라는 것 만으로는 추측이 불가능했다. 알게 된 것은 피렌체의 수많은 식당들 중, 창의적인 요리를 내는 곳은 손에 꼽는다는 것. 그리고 창의적이진 않더라도 기본기 튼튼한 음식은 맛있다는 거였다. 

창의적이지 못하면 어떤가. 마지 팬으로 누구도 본 적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레오나르도 같은 사람이 있다면, 우직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레시피대로 조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어느 쪽이 더 마지팬을 유용하게 사용했는가는 따질 수 없는 문제이다. 

나는 마지팬 조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마지 팬을  맛있게 먹을 뿐이다. 케이크 위에 오른 마지팬 조각을 집어 들며 생각했다. 창의적일 수 없다면, 기본기라도 튼튼한 사람이 되리라 하고. 그러다 퍼뜩, 달콤함 케이크 한 조각에 이제까지 누구도 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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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귤한 표지의 단편집!! 

찬바람 불 때 따뜻한 이불 안에서 귤 까먹으며 읽어도 딱 어울리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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