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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31. 2021

나이 먹는다는 건 멋진 일이야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 : 생강빵



한 여배우가 말했다.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 더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녀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려운 일일까.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무인 주문기 앞에서 서성이는 할아버지를 봤다. 할아버지는 기계의 안내음에도 쉽사리 결제를 완료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손가락은 화면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젊은 층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나이 든 분에게는 어려운 미션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 전에도 노인층의 정보격차에 대한 기사는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글로만 접하는 것과, 실제 목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나도 저분만큼 나이를 먹으면, 지금 당연하게 하는 것들에 어려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 실감되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세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나이 먹어도 젊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패션 잡지에는 주름 없애는 법, 동안 비법 등이 한 페이지라도 꼭 실려 있다. ‘어려 보이세요.’라는 말을 칭찬이라며 건네는 상대 앞에서, 나는 주춤하게 된다. 왜 이게 칭찬으로 쓰이는 사회가 된 걸까, 싶어 진다. 상대의 외모를 평가하면서 칭찬이라 말하는 사회라니, 아무래도 정상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꼭 젊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하늘에서 우산을 타고 내려온 엉뚱한 유모, 메리 포핀스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 서른 살쯤 되면 메리 포핀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쯤 되면 메리 포핀스가 입고 있는 긴 롱드레스도, 가죽으로 만든 구두도 어울리게 될 것 같았으니깐. 그뿐인가. 그 나이쯤 되면 메리 포핀스처럼, 욕을 하고 험한 장난을 치는 남자애도 우아하게 혼내줄 수 있게 될 듯만 싶었다. 혼자서 훌쩍,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어린아이가 혼자 갈 수 있는 곳이라 봤자, 한계가 있으니깐 말이다. 

내게 어린것은 전혀 멋진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살, 또 한 살, 나이 먹어 가는 것이 오히려 즐거웠다. 앞으로도 계속 즐거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물론 젊은 감각으로, 변화해 가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게 사는 건 중요한 일이다. 특히나 사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과거에 학습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새롭게 공부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진짜 ‘꼰대’는, 나이가 몇 살인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에는 정말로 멋진 할머니가 나온다. 부자에게도, 왕 앞에서도 한없이 도도한 메리 포핀스가 유일하게 경의를 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메리 포핀스가 찾아가는 비밀스러운 빵집의 주인, 코리 할머니다. 

코리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 십 대를 지냈던 관록 있는 분이시다. 특기는 보리로 만든 엿이나 박하사탕을 손가락 대신 자라게 하기. 가장 잘 만드는 것은 생강 빵이다. 그리고 하늘의 별을 붙여, 지구의 밤하늘을 밝혀주는 부업을 하고 있다.

코리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던 생강 빵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생강 빵이 꼭 빵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생강 빵. 통칭 진저브레드(gingerbread)는 ‘생강으로 향을 낸 빵 또는 과자’를 의미한다. 메리 포핀스의 무대인 영국에서는 ‘진저브레드 쿠키’가 가장 유명하다. <The Gingerbread Man(생강 빵 아이)라는 영국 민담에서는, 종이인형 모양의 진저브레드 쿠키가 오븐에서 구워지다가 도망을 치는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파킨(parkin)’이라고 불리는 케이크도 영국식 진저 브레드의 일종인데, 이것은 영국 북부에서 오트밀과 당밀을 넣어 만든 케이크에 생강을 첨가한 것이다. 

생강을 넣은 과자나 빵은, 딱히 영국에서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하던 때, 생강을 먹으면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영국의 헨리 8세(1491~1547)는 런던에 진저브레드를 보급하도록 지시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것을 보고 앞 다투어 생강을 넣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진저에일과 진저비어 등도 이때 만들어졌다. 음식에 생강을 첨가함으로써 약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스위스의 비버(Biber) 케이크, 네덜란드의 아침식사용 빵 온 트베이트 쿡(ontbijtkoek)등이 모두 진저브레드의 일종이다.

메리 포핀스가 코리 할머니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코리 할머니는 살아온 시간 동안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을 지니고, 코리 할머니는 지극히 할머니답게 행동한다. 가게를 잘못 본 딸들을 꾸짖고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준다. 

또한 코리 할머니는 지극히 코리 할머니답게 행동한다. 기쁘면 춤을 추고, 동전을 외투에 붙인다. 코리 할머니는 자기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나이 든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모습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결코 ‘난 나이보다 젊어 보여.’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나이가 많다고 치지, 뭐.’ 하고 말한다. 


런던 여행을 할 때, 진저 쿠키를 사서 먹었다. 메리 포핀스의 나라에 왔으니, 한 번쯤 진저 쿠키를 사서 길에서 먹어보고 싶었다. 런던에서 진저 쿠키는 티 푸드로 많이 판매되고 있기에, 어디에서든 쉽게 살 수 있다. 벤스 쿠키는 한국에도 론칭해 있는 유명 쿠키 브랜드인데, 이곳에서도 한국에는 없는 진저 쿠키를 판다. 영국 왕실 홍차로 유명한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는 예쁜 틴 케이스에 담긴 진저 쿠키를 살 수 있다. 그뿐인가. 작은 개인 쿠키샵에서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진저맨 쿠키 Gingerbread Men Cookie’도 손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산 진저 쿠키는 트래펄가 광장 한쪽에 있는 작은 쿠키샵의 것이었다. 동그랗고 네모난 모양보다는, 코리 할머니가 만든 듯한 별 모양 진저 쿠키를 먹어보고 싶었다. 쿠키샵의 오너는 백발 머리를 틀어 올린 나이 지긋한 할머니였다. 쿠키를 건네주며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말해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로 낯선 나라를 찾아온 여행자를 안정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인정하고 겪어온 세월만큼의 향기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란 보통의 음식에 첨가하는 것만으로 약이 되어주는, 생강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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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귤한 표지의 단편집!! 

찬바람 불 때 따뜻한 이불 안에서 귤 까먹으며 읽어도 딱 어울리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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