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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05. 2024

0429-0505 편지 주기(週記)



지난주의 나에게.


한밤중에 잠에서 깨었을 때는 놀랐습니다. 잠버릇은 고약해도 한 번 자면 잘 깨는 편은 아니거든요. 깨어난 이유는 통증 때문이었는데, 통증의 위치가 영 낯설었습니다. 다리나 등, 어깨가 아니라 엉덩이가 아팠습니다. 정확히는 항문이! 누군가 항문 근처 근육에 밧줄을 달아서 세게 당기는 그런 통증이었습니다. 항문이 평소에 거기 있다고 인식하는 기관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더군요.


순간 든 생각은 치질인가, 였습니다. 잠결에 엉덩이 쪽이 아프니깐 치질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치질에 걸릴만한 생활습관은.... 하루 종일 앉아있을 때도 있긴 하지만..... 얼마 전에 본 치질 만화 속, 수술을 받을 때의 수치스러운 포즈가 마구 떠오르고.... 그러다 진통제를 먹고 다시 잠들었지요.


그리고 다음 날, 아 진짜 가기 싫다를 외치며 병원에 갔습니다. 근처에 항문외과가 없어서 삼십 분이나 차를 타고 나갔지요. 결론은 치질 아님. 그럼 대체 왜 엉덩이가 아픈 건가요,라고 묻자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허리 안 좋으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아니, 선생님. 돗자리라도 까신 건가요. 신기해서 어떻게 아신 거냐고 묻자 선생님의 설명인즉 이랬습니다.  허리가 안 좋으면 근육이 수축되는데, 잠을 자면서 근육이 수축되어 있으면 아프니깐 몸을 피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강 이런 상황이 되는 거죠.


허리 : 수축될게.

본능: 펴볼게.

엉덩이 근육 : 아니 양쪽에서 왜 이러세요.


.... 이런 이유로 엉덩이 쪽 근육이 놀라서 경직, 그걸 항문이 아픈 걸로 착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한 번도 항문 근처에 근육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거기도 근육과 신경이 존재했던 겁니다. 당연한 일인데 너무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참으로 유기적이지요. 이렇게까지 유기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게 유기적입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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