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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01. 2016

사진 고르기의 어려움

2016.04.09-12 웨이하이 한중 사진교류전 이야기. 둘.


성실하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지 싶다. 초등학교 통지표에도, 대학 교수님의 추천서에도 쓰여 있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수업을 성실하게 들은 기억은 없다는 게 아이러니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잤다. 밤에 잠이 들지 못했고, 그 덕에 하루 내내 잠과 피로에 취해 지내던 때였다. 그런대도 붙어온 성실이란 평가는 내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관심이 없다.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객관화된 수치들이다. 혹은 내게 붙어있는 타이틀이거나. 그럴싸한 결과물만 내놓으면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는 중요시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평가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다. 안쪽에 가까워질수록 추해진다. 상대방의 추한 부분까지 뒤집어 쓸 각오란, 보통의 관계에선 필요가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던 때에는 저 두 글자 단어가 나를 비웃는 것인가 싶었다. 알게 된 후에는 약아졌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큼을 보일 줄 알게 되었다.
성실의 껍질을 뒤집어 쓴 불성실.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편하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교류전에서 날아온 공문을 읽고 막막해졌다.
중국에 전시할 사진 두점 이상 제출.
여기까지는 막막함의 농도가 좀 옅었다. 다른 사진들 사이에 껴 있을 내 사진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긴 했다. 그래도 한순간의 민망함만 각오하면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겠거니 싶었다.
막막함의 농도를 높인 건 주어진 주제였다.
한국을 드러낼 수 있는 것.




 주제가 정해진 사진을 찍는 것도 처음인데 하물며 한국이다. 그때부터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한국을 드러낼 수 있는 것.
한국적인 것.
일상적인 한국의 모습.
이것들은 모두 다른 뜻도, 같은 뜻도 될 수 있다. 더 막막했던 건 저 앞에 내가 생각하는이 붙느냐, 붙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모습.
그 안에는 한복도, 한옥도, 개다리 소반 위 차려진 밥상도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부러 걸음을 해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드러내는 한국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풍경들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이 되기에는 힘들었다.



 

내가 만나는 일상의 모습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자정을 넘어서도 꺼지지 않는 골목의 가로등길.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번잡한 간판들. 길 양 옆에 늘어선 포장마차 사이를 걷는 사람들.
그래서 그 모습들을 찍었다.
이걸 내도 되는 걸까.
자신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한국이 완전히 다르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결국 찍은 사진을 내지 못했다. 제출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슬레이트 지붕이 뒤덮인 종로 골목을 찍었다. 예전 사진들 중 한복 사진들을 골라냈다. 내게 익숙한 한국의 일상은 슬그머니 폴더에 밀어넣고, 적당히 골라낸 사진들을 보냈다.
그리고 후회했다.



 

 성실했던 걸까, 불성실했던 걸까.
사진을 고르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인줄 몰랐다.
적당히 예쁜 사진,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을 골라내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생각했다. 이른바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사진들 말이다. 하지만 그 사진들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보며 .’ ‘무엇이 좋아서.’ ‘골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은 없다.




 주제에 맞는사진을 찍는 것이 작위적인가 아닌가.
주제는 액자가 아니었다. 책상이 주제라도, 책상을 찍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그것은 책상이라는 주제에 맞는 사진이 될 수 있다. 찍은 사람이 그것이 왜 책상인지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그 사진에서 책상을 느낀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걸까.
고민을 넘어선 자신과의 전쟁이겠구나 싶었다.
성실했는지, 불성실했는지 스스로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는 안다. 나는 치열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내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는 변명은 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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