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9-12 웨이하이 한중 사진교류전 이야기. 셋.
웨이하이로 출발하는 아침, 비가 내렸다.
비행기는 두시간 넘게 연착되었다.
기다리는 것보다, 그 순간의 어색함에 더 지쳤다.
버스는 흙먼지 날리는 길가에 멈춰섰다. 호텔에서 한시간 여 달려 도착한 마을이었다.
왕가촌.
웨이하이 시내에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리커우산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위에는 광복사라는 절이 있다. 절 앞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이 두셋 서 있다. 마을 아래쪽에는 종종 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과 민박들도 드문드문 서 있다. 포장되지 않은 길로 제법 고급진 차가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 올라간다. 그 옆으로 괭이를 멘 할아버지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 올라간다.
주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관광지가 되어 가고 있는 마을.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마주친 왕가촌은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나눠 받은 종이에 쓰인 서너줄의 설명과 첫인상만으로 한 마을을 알 수는 없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한 곳으로 몰려갔다.
길 한쪽에 고구마 장수가 앉아 있었다. 흑갈색 윗옷을 걸치고 한 손에 담배를 든 장수의 얼굴에는 세월이 주름져 있었다. 사람들은 장수를 둘러싸고 앉아 셔터를 눌렀다. 고구마 장수는 주변을 둘러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커다란 눈이다. 눈꺼풀에도 주름이 졌다.
셔터를 누르던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구마 장수는 고개를 숙였다. 조금 웃기도 한 것 같았다.
고구마 장수가 담뱃재를 한 번, 두 번 바닥에 털어낼 때까지 카메라 셔터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내 셔터 소리는 그 안에 섞이지 않았다. 나는 광복사가 서 있는 언덕 위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을 찍는 것은 좋아한다. 놓치기 쉬운 사람의 표정을, 사진 안에서는 섬세하게 살펴 볼 수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찍히는 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생활하다보면 카메라에 찍혀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때때로 아는 사람들끼리 함께 어딘가 놀러가기라도 하면, 한 명쯤 사진을 찍는데 열중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팔을 잡아끌며 함께 셀카를 찍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때면 웃으며 찍을 수 밖에 없다.
아는 사람이니깐. 친구도, 가족도 아니다.
사진에 찍히는 걸 싫어한다고 주절주절 말해도 신경써 줄 의무가 없는 관계다.
뭐 어때. 한 장만 같이 찍자니깐. 그런 말로 밀어붙이다 짜증을 낼 거다. 조금 괴짜 취급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순순히 팔을 놓으며 미안, 그렇게 말할 사람이라면 애당초 무작정 사람 팔을 잡아 당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웃으며 사진 한 구석으로 슬쩍 숨어드는 기술을 익혔다. 조금 더 무뎌진 뒤에는, 모르는 사람과도 즐거운 듯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나를 오싹하게 만드는 사진들이 있다. 우연히 찍힌 것이 아닌, 집요하고도 은밀하게 나를 따라다닌 흔적이 묻어나는 사진들. 그런 사진을 건네며 인생샷을 만들어줬다 으쓱해하는 사람들.
그 뻔뻔함에 몸서리가 처진다. 그래도 지워 달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고마워. 적당히 좋아하는 척 인사치레도 한다.
둥글게, 둥글게. 튀지 않고 살아가는 건 중요하다. 몇 번의 실패를 통해 알았다.
그래야 가라앉지 않는다.
나는 얄팍한 종이배다.
나기를 이방인인 사람들이 있다.
언저리게 머무는 것이 편한 사람들. 왜 먼저 연락을 안 하냐는 타박을 듣는 사람들. 같이 신나게 술을 먹다가도 슬그머니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그런 주제에 휩쓸리는 물결에는 민감한 사람.
그들이 종이배가 된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의지는 애초에 없다. 그렇지만 남을 태울 생각도 없다. 자기 혼자 둥둥 떠 있기에도 힘겨우니깐. 거친 물결이 몰려오면 쑥, 강바닥에 가라앉는다. 다시 떠오르기까지는 악전고투를 해야만 한다. 그러니 주변 물결이 너무 거칠어지지 않게, 슬쩍슬쩍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다. 그렇지만 그 '좋은 사람' 취급조차 버겁다.
그래서 또 슬그머니, 둥둥 떠 내려가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니 떠돌아 보아야지. 카메라를 고쳐 메고 언덕을 내려왔다.
“거기, 잠깐 와서 좀 먹고 가.”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내게 불쑥, 고구마 하나가 내밀어졌다. 삶거나 굽지 않은 생고구마다.
껍질채인 고구마 여기저기 흙이 붙어 있었다. 고구마 장수를 찍던 사람들은 어느새 흩어져 있었다. 일행 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두어 분만 고구마 장수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고구마 장수는 아까와는 달리 무척 신명이 나 보였다.
활짝 웃자, 고구마 장수의 얼굴에 새겨져 있던 주름이 사라졌다. 눈을 덮을 듯 보였던 눈꺼풀이 눈웃음과 함께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그 표정에 이끌려 고구마를 받아들었다.
“딸이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는데. 한국에서 왔다니깐 아주 반가워하네.”
고구마는 달았다.
대화는 끝났다. 입에서 뱉어낸 고구마 껍질을 버릴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고구마 장수는 자기 발 아래 놓인 바구니를 가리켰다. 꾸벅 인사를 하고 버렸다. 고구마 장수는 돈을 받지 않았다. 마주 인사했다.
마을을 돌아보고 싶어졌다.
사진을 찍는 다른 사람들의 뒤를 거리를 두고 따라 걷다 점차 조금씩, 마을의 골목과 골목 사이로 시선이 엃혀 들어갔다.
걸음이 느려졌다. 담과 골목. 그 너머의 집들.
오후의 마을 산책은 사치스럽게 평화로웠다. 녹진녹진 녹아드는 기분이 되었다.
한 골목길 담벼락에 긴 빨래줄이 걸려 있었다. 담의 끝과 끝에 연결된 줄에 걸린 잠바가 흔들렸다. 찍었다.
갑자기 새된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젊은 여자가 화를 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억양과 표정으로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왜 그걸 찍느냐고, 여자는 내게 항의하고 있었다. 꾸벅, 미안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당황했다. 얼굴도, 집도 아닌 골목을 찍는 것이 누군가에게 거슬리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여자는 얼굴을 찌푸린 채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도 골목을 나와, 다시 마을 안을 걸었다.
사람에게 카메라를 향하는 건 망설여진다.
누군가의 소유일 게 분명한 사물에 카메라를 향하는 건 망설여지지 않는다.
그 차이란 나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마을이다. 대문에도 주인이 있다. 담벼락 위 꽃이나 세워진 자전거도 빨래와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누군가의 것이다. 그리고 소유물은 때때로, 누군가의 맨얼굴이 될 수도 있다. 소유자가 물건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서 말이다. 혹은 누군가 자신의 물건에 다가온다는 것, 찍는다는 것이 무척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아주 예전 일이 생각났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지냈을 때의 기억이다. 할머니의 집은 경운기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든 울퉁불퉁한 길 옆에 서 있었다. 할머니의 집에 가 있을 때면 며칠이고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말 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한마디로 깡촌이었다.
여섯 살인가 다섯 살인가. 그 즈음이었다. 나는 마루에 누워 있었다. 어른한 기억 속에서도 마루에 누워서 봤던 천장이 떠오르는 건 그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집의 마루에 누워 눈을 깜빡이는 그 시간은 내 살 속에 파묻히듯 스며들었다. 매일이 그러했기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하지도 않았다.
고요했다. 그렇기에 작은 소리에 귀가 쫑긋 섰다.
할머니 집의 대문은 빗장을 걸러 지르는 나무 문이었다. 아무리 문단속을 해도, 문짝 두 개 사이로 빈틈이 생겨났다. 그 빈틈 사이로 무언가 소리가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낯선 사람이 찾아와도 절대 짓지 않던 마당개 대신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경계 모드가 되었다. 대문으로 다가갔지만 문을 확 열 배짱은 없어서, 발 뒤꿈치를 들고 담 너머를 봤다. 담 위로 불쑥, 낯선 어른이 솟아올랐다.
“대문이 예쁘네. 한 장 찍었다. 꼬마도 찍어줄까?”
한 남자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나는 도망쳤다. 안방에 숨어들어갔다.
남자가 사라졌을까, 가슴을 조이며 이불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내가 바란 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남의 집 문을 함부로 찍어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하지만 남자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흡사 내게 베풀어주듯 말이다.
남자는 몰랐던 거다. 자신의 작은 셔터음이, 한 어린 여자아이의 평온한 일상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빨래를 찍고 있는 이방인을 본 순간, 여자도 어린 나와 비슷한 불쾌함을 느꼈던 게 아닐까.
사람이란 그렇다. 자신의 경험에서 끌어올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금세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고구마 장수의 웃음은 자신을 찍는 사람들에 대한 호감이었을 수 있다. 고개를 마주 끄덕인 것 만으로 충분한 교감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내가 그 교감을 이해하지 못했던 건, 나에게 그런 경험이 적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무례함을 겁냈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렇기에 종이배인 거야.
또다른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구부정 구부렸던 등을 폈다.
조금쯤 가라앉을 각오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