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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20. 2016

도서전에 가는 이유

2016년 서울 국제 도서전을 다녀오다




매년 유월, 전자 우편에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든다. 서울 국제 도서전이 열린다는 뉴스레터다. 이메일을 받고 달력을 살핀다. 이번에도 갈 수 있으려나. 매년 같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매년,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날짜가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선다. 

 올해도 그랬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빠듯한 일주일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한참이나 이불 속에서 꿈지럭거렸다. 이대로 자도 뭐. 그러다가 꾸물꾸물 일어나 옷을 입었다. 도서전으로 향했다. 오후 세시까지는 돌아와야 하지. 한 세 시간은 구경할 수 있으려나. 버스 안에서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나는 왜 돌아올 시간에 쫓기면서도 도서전에 가는 걸까.



처음 도서전에 갔던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학생이었던 때이니 5,6여 년 전이었을 터다. 처음 간 도서전은 한없이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일반 관과 어린이 관으로 나뉜 행사장은 사람으로 벅적였다. 출판사마다 30에서 70%까지 책을 할인해서 팔고 있었다. 평소 살까말까 주저하던 책들을 집어 드는 사람들의 손길은 경쾌했다. 택배 한 박스를 가득 책을  채워 보내는 사람들로, 택배 이용소도 분주했다. 그 번잡스러움이,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다음해 도서전 날짜가 다가왔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서울 국제 도서전은 1995년 처음 개최되었다. 첫 시작은 1954년의 서울 도서전이었다고 한다. 54년의 서울 도서전이 어떠했을지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그저 상상해 볼 뿐이다. 



골목길 북페어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열었던 작은 행사였을까. 아니면 출판사들이 대동단결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살 수 있게 해보자 했던 행사였을까. 어느 쪽이든 95년의 서울 국제 도서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서울 국제 도서전의 분위기조차 연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도서전이 열렸든, 그 규모가 어떠하든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도서전에 찾아온 사람들은 책을 집어 들게 된다는 것.

그 사실이다.


 

사람마다 도서전을 찾아가는 이유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한곳에서 책을 볼 수 있어서, 책에 관련된 축제를 즐기고 싶어서, 혹은 그저 표가 생겨서라는 이유일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도서전을 찾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책을 집어 들게 된다. 만지게 된다. 그렇게 책을 들고 옆을 본다. 한 번 만나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공간 안에서는 친숙하다. 모두 책을 들고 있으니 말이다. 


 

때때로 서점에서 이유 없는 친밀함을 느끼는 때가 있다. 나와 같은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다. 도서전 안은 그 친밀함으로 가득하다. 가끔은 아는 사람과 스쳐 지나가게 될 때도 있다.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나친다. 약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만나게 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 사람도 나도, 책을 좋아해서일 뿐이다.

 도서 정가제로 출판계와 서점들이 들썩였다. 행사가 거듭되면서 진부하다는 이야기도 튀어나왔다. 도서 할인이 없는 도서전은 메리트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사람도 만났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들도 꽤 있었다. 이번 해의 도서전은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나도 했던 터였다.


 

그럼에도 토요일 오전, 나는 도서전에 갔다.

 토요일 이른 아침의 도서전은 한적했다. 올해의 도서전은 참가 부스가 약간 줄었나, 싶었다. 해외 초대국들이 그림책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것은 당연하지 싶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그림은 통한다. 그 이유로 참가 부스들 중 그림책의 비중이 더 많아 보이기도 했다. 


 

눈에 띄었던 건 특강 프로그램이 예전보다 더욱 충실해진 것이다. 작가와의 만남에서 한 중학생의 날카로운 질문에 감탄하기도 했다. 나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독서 모임에 대한 특강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예전보다 줄어든 규모가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작은 출판사들을 더욱 잘 둘러볼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점이었다. ‘아름다운 책, 7개의 책상’이라는 특별 전시회 양 옆으로 핸드메이드 부스들과 작은 출판사 부스가 모여 섰다. 눈에 띄는 조형물 때문일까. 아니면 예전보다 더 잘 정돈된 동선 때문일까. 혹은 작은 출판사들의 출판물들이 부쩍, 눈에 띄는 퀼리티로 성장해서일까. 국제 도서전이 개인 출판물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많은 작가들에게 좀 더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 따로 독립 서점을 찾아올 여력은 되지 않는, 혹은 아직 그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슬쩍 발을 담글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젠 도서전에 책을 사러 가는 건 말 그대로, 메리트가 없다. 가격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면 할인에 포인트에 선물까지 딸려온다. 

그러니 사람들이 도서전에 가는 건, 메리트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터다.

 도서전에서 사람들은 책을 집어 든다. 어떠한 이유로 왔든, 책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게 된다. 도서전에 오는 사람들은 그 매력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도서전이 책에 대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되어갔으면 한다.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곳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웃으며 스쳐 지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내가 도서전에 가는 이유였다.(*)









유진 [타랑]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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