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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05. 2016

처음 방콕: 5. 모든 것이 있는 곳, 통로

일곱날 일곱가지 이야기. 방콕 길거리 첫번째



 통로에 오고 나서 알았다. 이곳은 방콕의 ‘핫 플레이스’라 불리고 있다는 걸.

 핫 플레이스. 핫 플레이스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곳은 더 이상 '핫'하지 않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남발되고 있는 표현이다. 언젠가는 전 세계 전 나라가 핫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정작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던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핫해지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곳에 갈 때마다 슬그머니 죄책감이 든다. 재미를 보는 사람들은 그곳을 왔다가 가는 사람들뿐인 듯 느껴져서다.

 통로에 도착하고 첫날.

 역에서 제이에비뉴가 있는 소이 15까지 천천히 걸어서 살펴봤다. 역을 나서면 도로 옆에 선 오토바이 택시, 랍짱 운전사들이 말을 건다. 히어, 택시, 컴온. 

 쏘이( Soi ). 태국어로 골목이란 뜻이다. 처음에 이 말의 뜻을 몰랐을 때는 소이라는 지역이 따로 있는 건가 싶었다. 소이 11, 소이 13. 방콕을 사랑한다는 이른바 방콕 마니아들 사이에서 소이라는 단어는 그만큼 많이 언급된다. 수쿰빗과 통로 지역을 이야기할 때 특히 그렇다. 골목이 살아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도로변에는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녁 즈음이 되면 가게 앞에 노점상들이 문을 연다. 가게에서 바깥에 테이블을 꺼내어 본격적으로 펼치는 것도 이때부터다. 음식점과 노점상들의 영역이 골목과 골목 사이를 경계로 은근히 구분이 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음식 노점상이 끝나면 이어지는 건 마사지 숍들이다. 오후 서너 시가 되어야 문을 여는 곳이 대부분이다. 마사지 숍들이 쭉 이어지던 골목은 짧은 횡단보도에서 끊어진다. 



 그 횡단보도를 건너 위로 쭉 올라가면 제이엔비뉴( J Avenue)가 나온다. 맥도날드와 그레이 하운드 카페 등이 모여 있는 트렌디한 종합 상가다. 힐을 신고 있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면 역에서 제이엔비뉴까지 걸어오는 건 권하지 않는다. 2,30분 정도 거리가 은근히 멀게 느껴질 것이다.  

 통로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통로의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빨간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정비를 하던 중인 듯했다. 제이엔비뉴(J Avenue)가 있던 건너편으로 길을 건넜다. 건널목을 두고 마주 본 길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제이엔비뉴(J Avenue) 쪽이 조금 더 서민적이다. 외국 회사들의 사무실이 모여 있어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길을 건너 다시 역 쪽으로 쭉 걸었다. 이쪽에는 마켓 플레이스가 있다. 스타벅스와 Tops 마켓, 스위츠너 등이 모여 있는 복합 상가다. 이곳의 스타벅스는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 

 통로에 일본인이 많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스타벅스에서였다. 여행 중 느닷없는 외주 수정 요청이 들어왔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스타벅스에 자리 잡았다. 사방에서 일본어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교재를 펼쳐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통로에서의 셋째 날 저녁.

 통로 쏘이 13 거리 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역을 기준으로 하자면 한 층, 더 안으로 들어가는 골목이다. 처음에는 씬 스페이스 13. 커다란 복합 건물을 찾는 편이 돌아다닐 기준을 잡기에 편하다. 애프터 유, 미스터 오퍼나지 등 맛있는 케이크 집도 만날 수 있다. 씬 스페이스 13 바깥으로 넓은 자리를 가진 칵테일 바는 오후 일곱 시쯤이 되면 흥겨운 빛을 띤다.



 이 골목을 돌아다니다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허름한 신당 아래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고양이와 잠시 눈을 마주치고 있자, 누군가 내 등 뒤로 다가왔다. 고양이 밥그릇을 든 여자다. 여자는 내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유어 캣. 

 노. 캣 이즈 프리. 

 잠깐 시선이 오고 가고 나와 여자는 웃었다. 같은 것을 좋아하면 잠깐 마주친 사이라도 마주 웃을 수 있다. 

 where it's all happening. 

 머무는 동안 둘러본 통로는 핫 플레이스의 본래 뜻이 무척 잘 들어맞는 곳이었다. 외국인이 바라는 ‘방콕스러운’ 풍경. 산책하기 좋은 골목, 쇼핑하기 좋은 가게들, 트렌디한 카페와 바까지 모든 것이 있는 거리다. 지하철로 웬만한 곳은 다 다닐 수 있지만 시암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약간의 한가로움을 원하지만 불편한 것은 싫다는 도시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제격이다. 

 만약 방콕에 이삼일, 짧은 여행을 온다면 시암에 있는 숙소를 찾는 게 제일이다. 어느 정도 방콕 지리를 좀 파악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었다. 요란스러운 시암은 살기에는 불편할지 몰라도, 여행자에게는 그만한 위치가 없는 곳이다. 딱 중간인 데다 BTS의 환승역이 모여 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를 방콕에서 지내게 된다 하면 통로에서 이삼일 정도는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통로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니깐.

 나도 다시 통로를 찾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On the next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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