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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08. 2016

처음 방콕: 6. 치타 대신 개구리. BACC

일곱날 일곱가지 이야기. 둘째날, 혼자라면 더욱 좋아 DAY 2-1




 쫑긋하니 위로 솟아있는 귀.

 나는 이런 귀를 가진 동물을 좋아한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귀가 아래로 처진 종들에게는 잘 시선이 가질 않는다. 동글동글 귀여운 올빼미와 귀깃이 쏙 올라간 부엉이 중 한쪽의 손을 들어주라면 단연 부엉이의 편이기도 하다. 쫑긋하니 주변을 살피는 그 모양새는 미어캣을 떠올리게 한다. 사방을 경계하지만 결코 비굴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은 나를 사로잡았다.

 스카이 워크 아래, 치타가 있었다.

 치타입니다, 하고 쓰여 있던 건 아니었다. 재규어이거나 고양이일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치타로 보였다. 타원형의 건물 앞에 당당히 서 있는 하얀 치타 조각상을 한 번쯤 직접 보고 싶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고작 저걸 위해서, 하는 이유로도 얼마든지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는 거다. 우선순위를 맞추어야 할 필요가 없으니, 원하는 대로 움직여도 오케이다.

 그래서 방콕에서 두 번째 아침을 맞이한 날, 주저 없이 BACC로 향했다.

BACC(Bangkok Arts and Cultur Center). 방콕 아트 앤 컬처 센터는 BTS 내셔널 스타디움 역을 내리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스카이 워크와 이어져 있기도 하지만, 하늘을 향해 누운 코끼리처럼 보이는 건물 자체도 인상적이다.

 여기를 내려가면 조각상이 떡하니 나를 반겨주겠지. 스카이 워크의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흥에 들떠 있었다. BACC 출입구를 지나,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없었다.

 사진에서 봤던 치타 조각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또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살펴봐도 쨍쨍한 햇볕 아래, 당당하게 서 있던 치타상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싶었던 곳에는 다른 것이 서 있었다.

 개구리였다.

 동그랗고 넓적한 얼굴의, 하지만 어쩐지 위엄 넘치는 흰 개구리 조각상이었다. 개구리의 얼굴은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 빵빵한 볼이 나를 약 올리는 듯만 했다. 

 내가 여기 있겠다는데 네가 어쩔 것이야.

 어쩌기는. 널 보러 온 게 아니라고. 안에 들어가 버릴 테다.

 BACC 건물 안으로 향했다. 건물 주변을 두 바퀴나 돌았던 터라, 어디든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입구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직원이 서 있었다. 티켓 박스가 어디 있냐고 묻자 싱긋 웃었다. 프리. 입장료는 무료였다. 



 BACC는 사람들과 아티스트들이 친근하게 서로 교류하고, 그를 통한 사회 발전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아티스트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볼 수 있도록 입장료는 무료, 사람들이 예술에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북스토어, 디자이너 샵, 카페 등도 건물 안에 함께 있도록 설계되었다.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소용돌이처럼 둥글게 말려 올라가는 계단이다. 이 계단에서 내려다보이는 홀에서는 작가들과 사람들간의 만남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핸드메이드 노트를 만드는 아티스트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열중해 내가 노트를 집어 드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노트 한 권을 사고 돌아서는데 계단 난간에 쓰인 글자가 보였다. 이 곳에도 도서관이 있다고? 궁금한 마음에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BACC의 또 다른 매력은 지하 1층에 위치한 도서관이었다.  

 디자인 도서관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분위기는 TCDC와는 전혀 다르다. 좀 더 여유롭다. 할아버지가 신문을 넘기고 있고, 커다란 가방을 옆에 둔 여행자가 여유롭게 인터넷을 하고 있다. 어디를 봐도 한적한 동네 도서관이다. 딱히 읽을 책도 없고, 공부를 할 일도 없지만 오늘은 도서관에 가볼까, 하고 향할 수 있는 마음 편한 분위기다. 한쪽에는 아이들을 위한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여유롭게 구경을 마쳤다. 디자이너 숍까지 둘러보고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전시 일정을 보니, 내가 갔던 때가 전시와 전시 사이의 틈이었다. 어쩐지, 맨 위층에는 아무것도 없더라니.

 그때의 전시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면, 전시는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보다는 한 잔의 커피가 더 기억에 남았다. 



 1층에 있던 커피숍에서 마신 커피다. 어떤 커피를 주문할까, 고민하는 내게 마스터는 숍의 블렌드 커피를 권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내려주는 커피.

 그것 역시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BTS 내셔널 스타디움 역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콕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내리게 되는 곳이다. 마분콩 센터와 짐 톤슨 하우스 등을 가기 위해서도 이 역에서 내려야 한다.

 반드시 BACC에 가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좋다. 다른 곳에 가기 위해 역에 내려, 잠깐 아래를 내려보면 그곳엔 무언가 있을 것이다. 동그란 눈의 개구리일 수도 있고, 뾰족한 귀의 치타일 수도 있다. 혹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 생각도 못 한 것이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이것 역시 방콕에서 돌아와 홈페이지를 보고 안 사실인데, 야외 전시물 역시 일정 기간을 두고 바뀌는 모양이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면 슬쩍 들어가 봐도 좋겠다. 혹은 BACC의 홈페이지를 미리 체크해봐도 좋다. 여행 기간 중에 마음에 드는 전시를 하고 있다면 ‘반드시 가볼 곳’ 리스트에 쏙 넣을 일이다. 입장료는 무료. 위치도 좋은 데다 맛있는 커피를 정성껏 내려주는 커피숍도 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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