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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09. 2016

처음 방콕: 7. 한권의 책을 만나러. 더 잼 팩토리

일곱날 일곱가지 이야기. 둘째날, 혼자라면 더욱 좋아 DAY 2-2





“마무앙. 뉴 북. 셀프 퍼블리쉬 북. 히얼.”

 BACC의 아트숍, 해프닝에서 마무앙의 엽서를 계산하던 중이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무앙의 그림을 만난 반가움이 내게서 뿜어져 나간 모양이었다. 아트숍의 주인이 메모지에 한 곳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 가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모두 알아듣기에는 내 영어가 너무 짧았다. 나와서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얼굴책에 페이지가 있었다.



 더 잼 팩토리 (THE JAM FACTORY). 

 건축가 Duangrit Bunnag가 디자인한 공간이라 했다. 홈페이지를 보니 건축 사무실과 레스토랑, 북카페가 한 곳에 모여있는 모양이었다. 페이지는 대부분 태국어로 쓰여 있었지만, 구글의 축복받은 번역 시스템 덕분에 대강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싸팍탄식 역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가는 게 제일 끌렸다. 단순히 제일 덜 헤맬 것 같아서였다.

 원래는 BACC를 나와 짐 톤슨 하우스를 가볼까 하던 참이었다. 이왕 내셔널 스타디움 역에 가니, 저녁에 야시장을 가기 전에 근처를 구경하자 했던 것이다. 전날 게스트 하우스 침대 안에서 일정을 짜며 나름 괜찮다 흡족해했던 차였다.



 이대로 짐 톤슨 하우스를 갈 것인가. 아니면 더 잼 팩토리에 가 볼 것인가.

 머리로야 알고 있었다. 오늘은 계획한 대로 근처에 있는 곳을 돌아보고, 더 잼 팩토리를 나중에 가면 될 일이었다. 여유롭게 짠 일정이니 어느 하루쯤, 갈 수 있는 날이 있을 터였다.

 그래도 나는 더 잼 팩토리를 선택했다. 나의 게으름을 알기 때문이었다. 추천받은 장소를 그때 바로 가지 않고 뒤로 미루면 70% 정도는 가지 않게 된다. 꾸물꾸물,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것이다. 

 역시 마음 끌릴 때 가야 한다.



 예전에 그런 기사를 봤었더란다. 동남아시아의 출판산업이 일본에 잠식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14년 해외 콘텐츠 시장의 동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태국의 콘텐츠 점유율 1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가장 소비가 많은 콘테츠는 만화와 디자인 분야였다. 한때 대만에서는 만화 잡지의 80%가 일본 만화로 채워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디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은 같은 모양이다.

 자신들의 책을 만들자는 움직임은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국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을 발굴하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은 태국일 것이다. 도시 곳곳에 디자인 센터를 세우는 등 태국만의 디자인을 확립해 나가려는 노력과 맥을 함께하는 부분이다.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동네 서점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진 또 하나의 바람. 

 셀프 퍼브리싱(self-publishing ). 그러니깐 독립 출판이다.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간단하게는 편집부터 배본까지 작가가 모든 일을 맡아하는 것을 일컫는다. 

 출판사의 권력화와 유행의 흐름, 대형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조작. 단지 순수하게 책이 좋아 읽고 싶을 뿐인데 들려오는 이야기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정제되어 있지 않아도, 정제되어 있지 않기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고 싶어 진다. 엉성하게 스테이플러로 찍어 만든 책을 집어 들게 된다.

 독립 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보통의 직장인들부터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낸 작가들까지, 그 범주에 한계는 없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검열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창작자 입장에서의 독립 출판의 장점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에게 독립출판은 하나의 분출구가 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도 독립출판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독립출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한 권의 잡지 때문이었다. 빅 사이즈를 전문으로 다룬 잡지는 신선했다. 그때부터 종종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마무앙의 독립 출판물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마무앙은 태국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다. 우리나라에서 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나도 그의 작품을 이 전시회를 통해 알았다. 귀여운 그림체로 삶의 모습을 꽤나 솔직하게 그려내는 작가이다. 그런 마무앙이 독립 출판으로 그려낸 책은 대체 어떨까. 책에 대한 기대감. 다섯 손가락에 꼽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다. 



 배에서 내려 조금 위로 걸어갔다. 낮은 계단을 내려가자 바로 보이는 건물들. 

 잼 팩토리의 건물들은 예전에 잼 공장이었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햇빛 속에 달콤한 공기가 섞여 녹아 내리쬐는 듯했다. 

 순간 알았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참 좋을 거라고. 



 역시 오길 잘했어.

 혼자 뿌듯해했다.(*)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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