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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17. 2016

처음 방콕: 8. 밤의 빛을 품다. 딸랏 롯빠이

일곱날 일곱가지 이야기. 둘째날, 혼자라면 더욱 좋아 DAY 2-3




 

 밤은 빛난다.

 한낮의 빛과는 다르다. 밤에는 밤만의 빛이 있다. 낮의 빛이 땅에 스며든다면 밤의 빛은 미끄러진다. 사물의 표면을 스치고 흘러내려 땅 속으로 스며든다. 야광충이 된다. 바닷속에서 빛을 품은 채 떠도는 야광충과 같다. 밤의 본질을 해치지 않도록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가, 자신들과 파장이 맞는 발소리에 깨어나 움직인다.

 밤 산책은 그래서 좋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혼자 하는 밤 산책을 가장 좋아한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빛을 이끌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사람들의 떠들썩함이 밤의 고요함과 뒤섞여 퍼져나간다.



 그런 밤을 느끼기에 야시장만한 곳이 없다.

 야시장이라는 카테고리 하나에 욱여넣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것이 야시장이다. 어떤 야시장에서는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팔고, 어떤 야시장에서는 손에 굳은살 박힌 아주머니가 공장에서 떼 온 인형을 판다. 밴드의 노래와 사람들의 함성이 어우러진 야시장이 있는가 하며, 좁은 골목과 골목 틈새에 좌판 몇 개 벌려 있을 뿐인 조용한 야시장도 있다.

 어떤 야시장이든, 그 나름대로 사랑스럽다.



 방콕에는 수많은 야시장들이 열린다. 따로 이름이 붙은 야시장들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웬만한 역에는 노점들이 서너씩 모여 작은 먹자골목을 형성하곤 한다.

 방콕에 가면 당장 가보자, 하던 야시장은 아트박스 나이트 마켓이었다. 방콕의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서 자신의 작품을 파는 곳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우사단 시장과 분위기가 약간 흡사할 듯도 했다. 

 하지만 웬걸. 내가 방콕을 찾는 기간 동안 아트박스 나이트 마켓의 개최 일정이 없었다. 원래 이 야시장은 개최 장소와 시기가 약간 불규칙하다.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가지 않으면 헛걸음을 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어디를 가볼까. 방콕 야시장에 대한 정보는 수두룩했다. 야시장 가는 재미로 방콕을 간다는 마니아들도 있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어디를 가야 하나 정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가자 싶었다. 야시장이니깐. 밤에 갔다 밤에 와야 하니,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이 덜 피곤하겠다 싶은 단순한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딸랏 롯빠이(Talad Rot Fai)로 정했다.

 딸랏 롯빠이. 시장이라는 뜻의 딸랏과 기찻길이라는 뜻의 롯빠이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 때문에 이 야시장이 매끌렁 시장에서 파생된 것인가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딸랏 롯빠이가 이 이름을 얻게 된 건 시장이 열리는 곳이 과거 기찻길이 지나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딸랏 롯빠이가 형성된 것은 2013년이었다. 짜뚜짝 주말시장이 열리는 깜펭펫에 모여들었던 노점상들이 이동해 온 것이 시작이었다. 시나카린 쏘이 51(Srinakarin soi 51).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된 후 남아버린 공터의 변신이었다. 그것이 점점 인기를 얻으면서 라차다 쪽에 2호점까지 생겨났다. 씨암쪽에 숙소가 있다면 2호점이 가깝고, 통로 쪽이 숙소라면 1호점이 약간 더 가깝다.  내가 묶은 게하는 통로에 있었으니깐. 주저 없이 1호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탔다. 택시는 십여분이 넘게 달려 금속 말이 서 있는 마켓 입구에 나를 내려 주었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통로를 걸었다. 솔솔 좋은 냄새를 풍기는 꼬치를 파는 노점상, 그 옆에 멕시코풍 인테리어를 뽐내는 근사한 펍이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노점상의 수는 많아지고, 그 물건도 다양해진다. 하지만 제아무리 규모가 크고 노점상이 많아도 쇼핑만을 본다면 딸랏 롯빠이는 짜뚜짝을 이길 수가 없다. 



 딸랏 롯빠이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빈티지 거리다.

 이 거리는 딸랏 롯빠이를 헤매다 보면 조용히 앞에 나타난다. 어깨를 부딪히며 걷던 인파가 갑자기 줄어든다. 노점상이 빽빽이 들어섰던 길에 빨간 트럭이 서 있다. 길 양 옆으로 쭉 늘어선 가게들은 무심하다. 적극적으로 손님을 불러 세우던 노점상들과 달리, 손짓 한번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게의 문만은 활짝 열려 있다.

 이 거리에 있는 가게들은 중 많은 수가 빈티지한 물건들을 취급한다. 어릴 적에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만날 수도 있고, 고급스러운 옛 가구에 시선을 빼앗길 수도 있다. 혹은 가구들 사이에서 자고 있는 커다란 개의 우아한 하품에 웃게 될지도 모른다.



 거리 한가운데는 앉을 수 있는 평상이 있다. 평상에 앉아 노점상에서 사 온 맥주 한 캔을 홀짝, 한 모금 마셨다.

 멀리서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소리가 끊길 듯, 이어지며 들려왔다.


 

 그 순간 나의 발아래가 반짝반짝, 빛났다. (*)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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