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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2. 2016

처음 방콕: 10. 기도를 낚아 올리기를, 사판탁신 역

일곱날 일곱가지 이야기. 셋째날, 혼자라면 더욱 좋아 DAY 3-1


 지하철 아래.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이 있었다.

 잘못 본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봐도, 낚싯대였다. 낚싯대를 드리운 남자 옆으로 아이들이 뛰어올라왔다. 길게 그늘을 드리운 기둥 아래에는 여자가 기도하며 앉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여인의 기도에 답하듯 동전 하나를 놓아두고 함께 손을 모으고는 자리를 떠났다.

 방콕의 한가운데에는 차오프라야 강이 흐른다.

 그 사실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이, 사판탄식 역이었다.



 사판탄식 역에는 사톤 선착장이 있다. 태국을 오고 가는 모든 수상 버스가 모여드는 곳이다. 방콕 사람들이 흔히 타고 다니는 수상버스부터, 투어 회사의 짜오프라야 강 일주 버스, 호텔에서 운영하는 무료 호텔 셔틀버스까지 사톤 선착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선착장이 있다는 건 강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 아래에까지 물이 흐를 줄은 몰랐다. 심지어 거기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더욱더 못했다. 역 계단을 내려오기 전까지 수상버스를 타는 곳이 어디일까 싶기만 했다.



 그렇기에, 계단을 모두 내려와 바라본 사톤 선착장 앞 풍경에 흠칫 놀랐다. 한쪽에는 떠들썩한 노점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역을 지탱하는 기둥 아래,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다. 누군가는 기도와 함께, 누군가는 절박함과 함께 삶을 견디는 모습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니다. 그 기둥 사이를 사람들은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 선착장으로 향한다. 주변에 심어진 나무와, 선착장 앞쪽 자리 잡은 작은 사원 아래에는 개들이 혀를 길게 내밀고 낮잠을 청하고 있다.

 특별히 떠들썩하지도, 조용하지도 않다. 여행객들도, 방콕 사람들도 그저 선착장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조금은 설렌 발걸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역시 여상한 일상에 묻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선착장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톤 선착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각자 갈 곳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선착장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한 관문일 뿐, 그 자체가 목적지가 되지는 않는다. 사판탁신 역에서 사톤 선착장까지의 짧은 길목은 점과 점을 잇는, 연결선이 되는 셈이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는 점과는 달리, 선과 선은 흔들리고 움직인다. 그렇기에 그 짧은 길목은 어느 곳보다도 꾸미지 않은 일상의 맨얼굴을 생생히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나는 길목을 지나 사톤 선착장에 섰다. 표를 사고, 수많은 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수상 버스에 올라탔다. 차오프라야 강에 몸을 맡겼다. 따끔한 햇빛이 뺨을 찔렀다. 

 눈에 남은 낚싯대의 잔상. 그는 낚싯대로 무엇을 낚아 올렸을까. 길목에 뿌려진 수많은 기도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방콕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차오프라야 강. 

 이 강은 핑, 왕, 욤, 난 네 가지 지류에서 흘러나온 강이 하나로 이루어져 만들어진다. 

 이 네 개의 강은 태국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강들이다. 

 파야오의 퐁 주에서 시작되는 욤 강은 수코타이를 거쳐 흐른다. 수코타이는 태국 최초의 왕조였다. 할아버지인 람캄행 대왕이 분발해서 키운 왕국은 손자 리타이 왕 대에서 아유타야 왕국에 흡수되어 버렸다. 백여 년을 간신히 버틴 왕조이지만, 태국 문자를 창시하고 신왕 사상의 근본을 만드는 등 명실상부 태국의 뿌리가 되는 왕조이다.



 태국 북부에서 시작되는 난 강과 핑 강. 이 두 강은 수코타이와 성립 시기가 비슷한 독립 왕국들의 운명을 지켜본 강이다. 지금은 태국의 도시 중 하나가 된 독립 왕국들이다.

 치앙마이에서 흘러나오는 핑 강.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에 있던 독립 왕국, 란나 왕국의 수도였다. 란나 왕국은 쑤코타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나란히 어깨를 견주었다. 태국으로의 완전 편입이 이루어진 것은 1939년으로, 이외로 그 시기가 늦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치앙마이가 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이유, 태국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로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 싶어 진다. 그곳은 고작 80여 년 전까지 독립된 한 왕국의 수도였던 것이다.

 난 지역에서 흘러나오는 난 강. 태국 북쪽에 위치한 난 주에서 발원된다. 난 주의 독립 왕국은 13세기 만들어졌다. 푸카 왕조가 지배했던 이 왕국은 쑤코타이와 교류를 맺기도 했으며, 15세기에는 란나 왕국의 속국이 되기도 하였다. 란나 왕국이 버마의 지배를 받았던 200여 년간 난 역시 버마의 통치를 받아야만 했다. 그 후에는 짜끄리 왕조, 즉 현재의 태국의 지배를 받게 된 것 역시 란나 왕국과 걸음을 같이 한다. 태국에 완전 통합된 것은 1931년이었다.


 

 현재의 람빵 지역에서 흘러나오는 왕 강. 람빵은 태국 왕조와 끊임없이 대결했던 미얀마의 흔적이 가장 진하게 새겨진 곳이다. 17세기, 당시 미얀마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은 람빵에 정착해 원목 수출 사업을 벌였다. 람빵이 태국의 영토가 된 것은 1774년으로, 이전까지는 미얀마의 점령 아래 있었다. 람빵은 미얀마와 태국, 그리고 영국의 제국주의가 뒤섞인 지역이 되었다. 태국에서 유일하게 있다는 꽃마차에 실려 있는 것은 낭만뿐만이 아니다.

 긴 역사를 묵묵히 감싸 안으며 흘러온 강들은 차오프라야 강에서 하나가 된다. 작은 독립 왕국들이 ‘쁘라텟 타이 Prathet Thai’. 자유의 나라 타일랜드 Thailand에서 하나가 되어가듯이.

 언제든 차오프라야 강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여행자의 흔들림도, 방콕 사람들의 기도도 함께 껴안고서. (*)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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