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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12. 2016

처음 방콕: 11. 그래도 사랑스러워, 꼬끄렛

일곱날 일곱가지 이야기. 셋째날, 혼자라면 더욱 좋아 DAY 3-2



 “이쁜, 이쁜. 투게더? 고.”

 남자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꾸깃한 제복을 입은 남자가 달려왔다. 남자와 남자는 서로 싸우다 사라졌다. 나는 덩그마니 남겨졌다. 눈 앞에 반짝이던 빛 속의 풍경이 흐려졌다. 

 도저히 이대로 배를 타고 떠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선착장까지 왔던 길을 뒤돌아 갔다. 종소리가 울리는 강변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한국이든 태국이든 어디에든, 무례한 사람은 있다. 그러한 무례함은 아무리 자주 접한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그대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건 꼬끄렛이 좋아서였다.


 

 꼬끄렛. 차오프라야 강에 만들어진 인공 섬이다. 

 차오프라야 강 매립 공사를 하면서 만들어진 섬에, 인근에 살고 있던 몬족의 후예들이 옮겨와 살기 시작했다. 빨간 벽돌과 거대한 물 항아리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덕분에 꼬끄렛은 도자기 마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녀와서 안 사실들이다. 이마저도 왓싸남느아 선착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분과 나눈 짧은 대화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나는 태국어를 몰랐고, 영어는 서툴렀다. 택시 기사분은 태국어는 잘했지만 역시나 영어는 서툴렀다. 영어가 서툰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마음은 편해도, 길게 이어지기는 어려운 법이다. 타이랜드 피폴, 와이 컴 팍끄렛. 템플, 메니 템플. 몬족, 피폴. 레스트. 이런 단어의 나열들 속에서 몬족이라는 말을 기억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꼬끄렛에 간 건, 단순히 차오프라야 강의 끝을 가 보고 싶어서였다.

 처음 수상버스를 탔던 날, 게하에 돌아와 그렇게 말했더니 옆 침대의 주인이 알려주었다. 그럼 꼬끄렛에 가 보라고. 수상버스의 노란 선의 끝, 마지막 정류장인 논타부리 역이 꼬끄렛에 가는 길목이라는 거였다. 옆 침대의 주인 왈. 원래 일정에 넣어 두었는데 치앙마이로 가는 날이 하루 당겨져 가지 못하게 되었단다. 

 불편한 점은 많아도 이런 매력 때문에 게스트 하우스에 묵는 것을 그만 둘 수가 없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꼬끄렛으로 향했다. 하루를 이곳에 쏟아붓기로 정했던지라 조급함은 없었다. 사톤 선착장에 도착해 표를 끊었다. 종점인 논타부리까지의 요금은 15밧였다.

 수상버스에 앉은 내내 차오프라야 강의 물결이 설렁이는 것을 멍하니 봤다. 햇볕에 정수리가 따끈따끈 해 졌을 때쯤 배가 멈췄다. 한 시간이 안 되는 동안 나는 물결 속에서 뱃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퐁, 퐁 튀어 오르는 것을 들었다.

 논타부리에 도착해서 다시 왓싸남느아 선착장으로, 그곳에서 다시 작은 배를 탔다. 예쁜 모자를 쓴 여학생 셋이 내 옆에 서 재잘거렸다. 옥타브 높은 웃음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배에서 내렸다. 입장료 2밧을 내고 다리를 건넜다.



 꼬끄렛 도착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원이었다. 공사 중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원의 마당에 모여 있었다. 사원 앞 설명판에는 태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여 있었다. WAT PAK AO. 지금은 PARAMAIYIKAWAT라고 불리는 사원이었다. 유명한 방콕 쏭크란 물축제의 메인 사원이기도 하다는 것으로 설명은 끝났다. 태국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사원이었던 셈이다. 택시 기사의 템플, 이라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이 한창 펼쳐지고 있는 작은 무대를 지나니 아케이드 안에 자리 잡은 시장거리가 나왔다. 

 눈이 마주쳤다. 웃었다.

 꼬끄렛의 시장을 구경하는 동안,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 눈이 많이 마주쳤다. 

 꼬끄렛의 시장은 달랏 롯빠이 야시장과도, 통로 역 앞자리 잡은 노점상들과도 다른 분위기였다. 길 한가운데 앉아 통기타를 연주하는 백발의 예술가, 공룡의 마리오네트 공연을 보는 남자아이는 입을 다물 줄 몰랐고, 인형에 둘러싸여 바느질을 하고 있던 할머니는 내 카메라를 보자 빙긋 웃었다. 

 시장을 구경하던 도중 식당에 들어섰다. 메뉴판을 읽을 수가 없어 주춤거렸다. 냄비 앞에 서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손짓을 하더니 다섯 개의 소스를 하나씩 떠먹여 주었다.



 시장의 끝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무다리를 건너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선 마을이 이어졌다. 개 한 마리가 길 가운데에서 나를 멀뚱히 바라보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마을을 절반쯤 돌아봤을 때, 나는 이미 꼬끄렛을 좋아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종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강 위로 배가 세 번, 왔다 갔다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흐려진 풍경은 쉽사리 빛을 찾지 못했다.

 여행의 매 순간은 즐겁지 않다. 아름답지도 않다. 한 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과 많이 부딪힐수록 그렇다. 일상과 가까워지는 여행에는 당연히 일상의 불협화음도 따라 들어오게 마련이다. 

 때로는 한순간의 실망이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사랑스러움을 가져가 버리기도 한다.



 이곳에 대한 기억도 그렇게 되어 버리는 걸까.

 다시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순간 꼼지락, 나무 아래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작은 천 뭉치가 그곳에 있었다. 꼬물꼬물,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어린 강아지들이 어미 옆에 몸을 붙이고 누워 있었다. 색색의 헝겊을 이어 만든 담요가 어린 강아지들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한참이나 강아지의 작은 얼굴과, 헝겊의 무늬를 바라보았다.

 눈을 떼었을 때 꼬끄렛의 풍경은 참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








포송 [유진]

Blog : http://blog.naver.com/hik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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