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원 둘러보기. 두번째
첫인상이라는 것 말인데.
예전에는 누구나, 어떤 것이든 첫인상을 남기는 줄 알았다. 좋든 나쁘든.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알았다.
누구든 첫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첫인상을 남기는 것들은 어떠한 면에서든 강렬한 것들이다.
혹은 다른 사람에게는 여상한 것이라도, 자신 안의 무언과 딱 들어맞는 것들이거나.
예쁘다.
바콩 사원의 첫인상이었다.
차에서 막 내린 직후였다. 눈앞의 사원이 바콩이라는 것도 알기 전이었다.
길 옆의 작은 연못. 짙은 초록이 연갈색의 길을 따라 사원까지 이어져 있었다.
사원 앞에 서 있는 나무에 핀 작은 꽃들과 어우러져, 사원은 하나의 나무인 듯 보였다.
사원이 나무라면, 탑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은 꽃이었다.
색색의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갈색과 초록 사이에서 피어났다 사라졌다.
바콩 사원은 무덤이었다.
이 예쁜 무덤의 주인은 인드라바르만 1세이다.
룰루오스 지역의 전성기를 이끈 왕.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 크루만 제국의 기록 중에서도 단연 업적을 인정받고 있는 왕이다. 인공 저수지를 만들고, 수리 시설을 정비했다. 프레아 코 사원을 만들어 조상들과 신을 기렸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사원 역시 만들었다. 그것이 바콩 사원이다.
죽어서 자신의 무덤이 될 사원을 미리 만든다.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였다. 이집트에서 사후의 무덤을 준비하는 사업은 왕의 재위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었다. 왕의 권력이 굳건함을 증명하는 것이자, 왕이 신과 동일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과 왕이 동일시되는 사회에서 신전과 무덤은 확연히 분리되는 건축물이 아니었다.
때문에 인드라바르만 1세 이후부터의 왕들은 그를 따라, 자신들의 무덤 역시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모두 내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캄보디아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친구는 내게 캄보디아의 몇몇 사원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건물을 좋아하는 이 친구는 종종, 내가 어딘가로 여행을 간다 하면 그 나라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곤 했다.
그날도 카페에서, 반쯤 널브러져 앉아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무덤의 기능을 가진 신전과 그렇지 않은 신전을 구분하는 법이 있어. 피라미드 알지. 일반적인 삼각형 뾰족한 모양을 떠올려 봐. 그것처럼 탑의 가장 상부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위로 솟아올라 있으면 무덤. 그렇지 않으면 조상과 신을 위해 받친, 말 그대로 사원.”
당연한 말도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진짜 초보 분류법’ 이기에, 이 분류법에 들어가지 않는 사원이 절반이 훨씬 넘는다고 말이다.
이 당연한 예외.
친구가 내게 해 주는 이야기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절반에도 적용 안 되는 거 설명 들어서 어디에 쓰라고.”
“네가 캄보디아에 가서 볼 사원은 그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수도 안 되거든.”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도 몇몇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롤로오스 유적과 앙코르와트 유적의 제일 큰 차이점은 벽돌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라던가, 바콩 사원부터 앙코르와트 건설 기법이 나온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절반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쩌겠는가. 친구가 아무리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해도 내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을.
가끔 나와 이 친구가 어떻게 알고 지내게 된 것인지 신기할 때가 있다. 서로 맞는 부분이 전혀 없어서이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라면 여행을 느리게 한다는 것뿐일까.
“별게 다 신기하네. 그냥 처음에 보고 기억에 남아서, 그거 아닌가.”
“넌 누구든 기억할걸. 눈에 띄잖아.”
친구는 아주 희한한 말을 들었다는 듯, 나를 빤히 봤다.
“나 인상 흐려. 내가 눈에 띈다고 하는 거, 너밖에 못 봤다. 일 년간 동호회 활동했는데 거기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 못 하더구먼.”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첫인상이라는 것에 대해.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런 곳이 있다.
그곳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쩐지 마음에 드는 곳.
혹은 잠깐 동안 머물렀을 뿐인데도 아주 길게 잔상을 남기는 곳.
그런 곳들을 생각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곳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단번에 말할 수 있다는 것.
바콩을 향해 걸어 들어가다 알았다.
오로지 본 것만으로, 이토록 선명한 첫인상을 받은 사원은 바콩이 처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