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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4. 2017

호수는 말라도 노란 꽃은 남아: 롤레이 사원

캄보디아 사원 둘러보기. 세번째



 호수 한가운데 서 있는 사원.
 사원을 향해 배를 저어 다가가는 사람들.
 배에서 내려높은 계단을 올라가 본 호수 너머 세상은 풍요로웠을까.
 롤레이 사원 앞에 서 잠시 그런 상상을 했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롤레이 사원은 검은 천에 가려져 있었다수많은 목자재와 철을 이어 만든 지지대가 사원을 지탱하고 있었다철모를 쓴 사람들 몇몇이 사원 주변을 돌아다녔다.
 캄보디아는 건기와 우기의 차이가 확실한 편이다. 건기와 우기 때의 호수 수면이 보통 여섯배까지 차이가 날 정도이다. 그러니 댐이 없으면 건기 때에는 식수조차 구하기 힘들어진다. 지금도 그러니 예전에는 오죽했을까.
 인드라바르만 1세가 인공 저수지를 만든 건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 저수지에 사원이 세워진 것은 한참 뒤였다. 사원을 세운 것은 인드라바르만 1세의 뒤를 이은 야소바르만 1세였다. 



 


 야소바르만 1세가 롤레이 사원을 지은 것은, 어쩌면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을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야소바르만 1세와 다른 왕자들의 전투 때문에 룰루오스 지역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고 할 정도이니, 야소바르만 1세 때의 왕위 쟁탈전은 무척이나 격했던 모양이다. 야소바르만 1세는 인드라바르만 1세의 동생이라는 설도 있고 둘째 아들이라는 설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골육상쟁을 치루어야 했던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았을 터다. 
 이 롤레이 사원 건축을 마지막으로, 야소바르만 1세는 도읍을 룰루오스 지역(당시 명칭 하리하랄라야)에서 앙코르와트 쪽으로 옮긴다. 룰루오스 시대의 막이 내린 셈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수지는 이미 메워진 지 오래다기단 위에 세워졌다는 4개의 탑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무너져 내려 있었다사원 안쪽의 신단에는 말라붙은 꽃만이 초라하게 서 있었다롤레이 사원은 더 이상 수상 사원이 아니었다룰루오스 시대의 화려함을 상상하기에도 힘든 모습으로 간신히 서 있을 뿐이다



 


 무너져 내린 영화란 이런 것인가. 씁쓸한 마음으로 사원을 한바퀴 돌아 나왔다. 그제서야 롤레이 사원 옆쪽에 서 있는, 단정한 건물이 보였다. 불교 사원이었다. 힌두교 사원인 롤레이 사원 옆에 불교 사원이라니. 신기했다. 그러다 부끄러워졌다. 
 무너져 내리다니. 대체 무엇이. 그 얼마나 오만한 여행자의 눈이란 말인가.
 캄보디아는 14세기까지는 힌두교가 최대 종교였지만, 지금은 국민의 95%가 불교 신자다. 그러니 그 풍경이 썩 이상할 것 없는 거였다. 사원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을 테고, 그곳에 또 하나의 사원이 생겨난 것이다. 불교든 힌두교이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을 지탱해 줄 믿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었으리라.
 잠시 캄보디아를 찾는 사람에게 롤레이는 그저 유적일 뿐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롤레이는 삶의 터전 중 일부이다. 먼 옛날과 모습이 같지 않다고 해서 무너져 내린 것도, 사라져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시간들. 길고 아프기도 한 삶을 오롯히 지켜보다 사람들과 함께 늙어갔을 뿐이다.
 그 풍경은 잠시 눈도장을 찍으러 왔을 뿐인 여행객이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롤레이 사원 근처에 롤레이 초등학교가 있다롤레이 사원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이다
 캄보디아의 교육 시설은 열악하다공교육이 존재하지만 계속된 내전과 정치적 혼란으로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때문에 많은 곳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사원이나 NG0단체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란다
 캄보디아에 교육 봉사를 다녀왔었다던 일행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롤레이 사원을 봤다
 비바람에 페이지가 닳아 사라지고 있는 책이 떠올랐다
 아무리 안의 글자가 지워지고너덜너덜해 진다 하더라도 책은 책이다자신이 품은 것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글씨가 사라진 종이에는 아이들이 글씨를 쓰며 익힐 것이다닮아 떨어진 표지에는 또다른 무언가 입혀질 것이다
 롤레이 사원도 마찬가지었다그 모습은 바뀌었지만롤레이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도가 가 닿는 곳이었다





 롤레이 사원을 나올 때 노란 꽃이 가득 핀 작은 정자가 보였다
 그 꽃은 저수지가 메워지던 순간어딘가에 피어있던 꽃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저 꽃은 어디에서든 피어나겠구나.
롤레이 사원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같은 노란 꽃을 보았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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