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원 둘러보기. 다섯번째
석상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앙코르 톰에 도착한 건 이른 아침이었다.
숙소에서부터 앙코르 톰까지는 오토바이 택시, 툭툭을 타고 갔다. 도로는 같은 곳을 향하는 툭툭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로 향하는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 유적 중 유일한 불교 유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앙코르 톰을 재건한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 신자였으니깐.
자야바르만 7세는 국교를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꾼 왕이기도 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왕족이 아니었다. 타고난 출생으로 계급이 정해져 버리는 힌두교 아래에서라면 그의 위상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자야바르만 7세는 크메르 제국에서 손에 꼽히는 유명세를 가진 왕이다.
인드라 베르만 1세가 세종대왕이라면 자야바르만 7세는 광개토 대왕이랄까.
자야바르만 7세는 혼란스럽던 제국을 정비하고 인도차이나 전역에서 말레이 반도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의 왕들 중 자선병원을 최초로 세운 왕이기도 하다.
광개토 대왕과 다른 점이라면 후계자 정리를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점일까.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크메르 제국은 다시 권력 전쟁에 휩싸이고, 그것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지고 만다.
앙코르 톰에 도착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해자 위로 길게 뻗은 다리였다.
다리 양쪽으로는 각각 54명의 신들이 뱀의 왕, 바수어 키를 잡고 있는 조각이 세워져 있었다. 한쪽은 천신들이, 한쪽은 악마들이다. 신과 악마가 다 같이 뱀을 들어 바닷속을 휘젓는 장면. ‘바다 휘젓기’ 전쟁이지 싶다.
성문을 지나, 다시 툭툭에 올라탔다. 앞으로 코끼리가 지나갔다.
코끼리를 탄 사람들이 살짝, 곱게 보이지 않았던 건 왜였을까.
툭툭이 멈춘 곳은 바이욘 사원이었다. 앙코르 톰 안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이다.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관음보살 상이 트레이드 마크다.
사원 곳곳에 놓인 이 관음보살상은 자야바르만 7세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바이욘 사원은 두 번 봐야 좋은 사원이다.
처음은 아래에서 위를 봐야 한다.
사면 벽을 둘러싸고 새겨진 부조를 볼 때에는 고개가 위를 향할 수밖에 없다. 부조 중에는 당시의 생활상을 그려낸 것이 있어, 자세히 들어가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힌두교의 신화를 새긴 부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근함이 묻어나 있어서 더욱 그렇다.
두 번째로는 위에서 아래를 봐야 한다.
3층까지 올라, 창밖으로 관음보살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모두 다른 표정으로 보인다는 관음보살상은 위에서 아래를 봐야만 이 그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지 싶었다.
한 곳에 서서 관음보살상을 마주하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미소는 슬퍼 보였다.
문득, 생각했다. 저 미소를 참 여유롭구나 하며 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겠구나 했다.
그리고 알았다.
바이욘 사원의 관음보살 상의 미소가 천의 얼굴이 된 이유.
그 앞에 선 사람의 마음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다 작고 노란 점을 봤다.
작은 부처 상이 길 한가운데, 우산 아래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흑갈색과 녹색이 주를 이루는 사원 안에서 그곳만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사원을 나와 다시 툭툭에 올랐다.
사원 앞 해자에 앉아 있던 아이가 일어났다. 아이는 나무 아래에서 일어나 껑충껑충, 물을 건넜다.
손에 든 노란 바나나를 사원 앞에 어슬렁거리던 원숭이에게 주었다.
그 선명한 색이 시선을 잡아끌어,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다. (*)